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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근무하는 연구소가 광화문 근처에 있어 거의 매일 이순신 장군상과 세종대왕상을 보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12척의 배로 울돌목(명량)에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장군과 훈민정음 28자(자음 17자, 모음 11자)로 문자 소통의 어둠에서 온 겨레를 구한 임금이 한자리에 있다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이순신과 세종은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위인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상징이니 한자리에 있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두 위인에게는 공통점이 많지만 영화 <명량>을 보면서 크게 다섯 가지를 떠올렸다. 첫째는 12와 28이라는 적은 숫자의 의미다. 비록 적은 숫자지만 그것을 극대화하면 그 어떤 숫자보다 크고 위대해진다는 점이다. 지도자의 진정한 리더십이 구성원의 힘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면 이순신과 세종 모두 그랬다. 12척에 탄 병사들뿐만 아니라 12척을 둘러싼 지역 주민들까지 그 모두의 힘을 극대화했기에 12척은 300여척을 넘어서는 힘이 되었고 “우리가 개고생한 것을 후손들이 알지 몰라”라고 외쳤던 노꾼들의 후손을 구한 힘이 되었다. 세종도 가장 간결한 28자를 통해 그 기능을 극대화함으로써 백성 힘의 근원인 소통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정보와 지식뿐만 아니라 섬세한 우리의 감정까지도 소통할 수 있는 길을 통해 백성을 구하고 나라를 구한 것이다.
둘째는 건강한 조직을 통해 구성원들이 재능을 맘껏 발휘하게 했다는 점이다. 비록 이순신 장군에게도 배설 같은 배신자도 있었고 일부 주춤거리던 장수들도 있었지만 끝내는 모두가 전심전력을 다해 일사불란하게 자신들의 재능을 아낌없이 발휘했고 그것이 승리의 지렛대가 되었다. 세종 역시 적재적소에서 인재들이 역량을 맘껏 발휘하게 했다. 노비 출신인 장영실조차 중국으로 유학을 보내 선진 학문과 기술을 배우게 한 뒤 맘껏 재능을 발휘하게 했다.
셋째는 철저한 준비 전략에 있다. 12척의 승리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이순신은 무능하고 파렴치한 지배자들에게 고문당한 만신창이 몸을 가지고 불가능하게 보이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것은 그가 평소 건강한 군대를 위해 부단히 애쓰고 힘을 기울였기에 가능했다. 그에게는 장교든 사병이든 모두가 중심이었다. 건강한 군대, 훌륭한 지도자가 있는 군대에서 윤모 일병 사건과 같은 참혹한 일이 벌어질 리 없다. 세종 또한 10년 넘게 음악 연구, 천문학 연구, 음운학 연구 등을 통해 새 문자 창제를 철저히 준비했다. 거기다가 질병, 굶주림, 국방 등 나라의 온갖 문제를 해결하면서 국가 역량을 최고로 끌어올렸다. 세월호와 관련된 관피아 같은 부패 조직과 공무원이 나올 리 없었다. 이런 준비가 있었기에 1443년 12월 훈민정음 28자를 당당하게 공표할 수 있었고, 사대부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넷째, 소통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실천했다. 이순신 장군의 서재는 운주당이었는데, 이곳에서 모든 일을 밤낮으로 대상을 가리지 않고 의논했다. 이런 소통 실천이 건강한 군대, 효율적인 군대, 서로 믿고 따르는 군대를 만들었다. 세종 또한 공식 회의나 경연에서 끊임없이 신하들과 토론을 실천했다. 가장 중요한 소통의 문자를 만들기까지 했던 것이다.
다섯째, 두 사건 모두 기적 아닌 기적이라는 점이다. 12척의 승리가 이순신이 철저히 준비한 역량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지만 300여척과 싸워 이긴 것은 기적임에 틀림없다. 세종도 15세기에 28자와 같은 소리문자를 만든 것은 기적이었다. 왜냐하면 당대의 지식인이나 사대부 그 누구도 우리말을 한문으로 적는 모순을 모순으로 인식하지 않았고 하층민을 배려하는 소통을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적은 기적이되 철저한 준비와 노력에 의한 것이니 기적 아닌 기적이라는 것이다.
세종대왕 동상과 이순신 동상 (출처 : 경향DB)
안타깝게도 세종은 당신이 만들어 반포한 우리 겨레의 위대한 한글이 아닌 한자로 되어 있는 ‘光化門(광화문)’ 앞에 서 있고, 소통을 중요하게 여긴 충무공 이순신 장군상은 ‘李舜臣將軍像’이란 머릿돌로 되어 있다. 이것이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업적을 칭송만 하고 제대로 배우지 못한 우리 군대와 가장 위대한 문자를 만들어 놓고도 500년 이상을 비주류 문자로 홀대해온 부끄러운 우리 역사의 상징이 아니고 무엇이랴. 세종이 집현전 학자들과 1425년에 내걸었던 ‘광화문’, 대한민국 위대한 상징인 이순신 장군상 이름은 대한민국 공용문자인 한글로 표기해야 한다.
김슬옹 | 한글학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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