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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스포츠대회를 장밋빛으로만 보던 시대는 지났다. 경기장과 인프라에 수십조원을 투자하고도 기대 효과를 누리지 못하고 결국 빚더미에 앉는 개최도시의 사례도 늘고 있다. 1976년 몬트리올,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경우 대회를 잘 치르고도 과도한 시설 투자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재정적자의 늪에 빠져들었다.
세계대학스포츠 축제인 유니버시아드를 준비하면서 이들 실패한 도시들의 전철을 밟지 않는 것이 최대의 과제였다. 2008년 대회 유치부터 ‘저비용 고효율의 흑자대회 실현’, ‘시민에게 빚을 남기지 않는 대회 개최’라는 목표를 내세운 이유이기도 하다.
유니버시아드는 규모가 날로 커져 2015년 광주대회에는 170개국 2만여명의 참가가 예상된다. 그만큼 준비도 복잡해졌고 모든 준비과정에 국제기구의 승인을 얻어야 하는 국제대회 특성상 조직위원회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여지도 줄었다. 이 때문에 대회준비 첫 단계에서부터 3가지를 염두에 두었다. 첫째, 경기장 신설을 최소화하고 기존 시설을 최대한 활용한다. 둘째, 국제연맹과의 적극적 협상을 통해 불필요한 예산은 줄인다. 마지막으로 마케팅권리를 최대한 확보한다는 것 등이다.
2015 광주유니버시아드 성공 기원하는 손연재 (출처: 연합뉴스)
올림픽과 더불어 세계종합대회인 광주유니버시아드는 68개 경기장에서 21개 종목의 경기가 치러진다. 가장 큰돈이 들어가는 경기장의 경우 수영장, 다목적 경기장, 양궁장 등 3개의 시설만을 신축하고 나머지는 기존시설을 활용했다. 신축 경기장마저도 대학 내에 둬 대학이 토지를 기부하는 방식으로 수백억원을 아끼고 사후활용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다. 국제기구와의 끈질긴 협상 끝에 마케팅 권리도 100% 조직위에 가져왔다.
그 결과 지금까지 정부로부터 승인받은 총사업비보다 무려 1220억원을 줄일 수 있었다. 국내 개최 국제스포츠대회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 5월 정부의 재정전략회의에서 광주유니버시아드가 국제스포츠대회의 우수 재정모델이자 표준모델로 발표된 배경이기도 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효과에 지나친 기대를 걸거나 사후 활용이 떨어지는 시설에 비정상적인 투자를 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개최도시의 입장에서 스포츠대회는 사회간접자본과 스포츠·관광 인프라를 해결하는 방안이 되기도 한다.
광주의 경우 정부가 KTX 고속철도 호남선에 8조8000억원을 투입하여 유니버시아드 개최 이전인 연말 완공을 앞두고 있다. 착공 5년 만이다. 호남선 복선화가 38년이 걸렸던 전례로 보자면 놀랄 만한 속도다. 도심의 낡은 아파트를 선수촌으로 재건축하는 방법으로 지역의 해묵은 숙원을 해결할 수도 있었다. 화장실에 한 번 다녀오면 4회 말이 지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큼 낙후했던 야구장을 새롭게 단장하는 계기도 되었다. 지방재정여건으로는 요원했을 일들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역의 경쟁력과 더불어 나라의 품격을 높이는 국제스포츠대회 운영을 고민한다면 흑자대회는 불가능한 일만도 아니다.
김윤석 | 광주유니버시아드 조직위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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