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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츠부르크의 소금광산 깊은 곳에 잎이 떨어진 나뭇가지를 던져 넣어두고 몇 달 뒤에 꺼내보면 나뭇가지는 간데없고 온통 반짝이는 소금결정으로 덮여 수정처럼 아름답게 빛난다.”

스탕달의 <연애론>에 등장하는 그 유명한 ‘결정 작용’이다.

연애에 빠지면 곰보자국도 다이아몬드처럼 보이고, 처가의 말뚝만 보고도 절하게 된다는데, 축구? 그렇다. 우리 선수의 태클은 절묘한 기술이지만, 상대편 반칙은 퇴장감으로만 보이며 말이 ‘응원’이지 민족주의의 이기적 유전자들의 ‘결정 작용’을 넘어섰다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릴지 모른다.

며칠 동안 조심스러웠지만 월드컵에 빠지고 싶었다. 정치, 경제, 사회 어느 것 하나 시원한 소식이 없었기에 브라주카 한 방에서 위안을 얻으려고 정반대 시차임에도 새벽 출근길 거리로 나섰고 TV 앞에 모여 응원했다. 그러나 한 가닥 기대는 무너졌고, 프랑스월드컵 이후 1승도 거두지 못한 용사들의 쓸쓸한 귀환 길에는 급기야 꽃 대신 엿이 등장하기까지 했다.

'제발'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제 다른 나라 경기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참 편하다. 응원단의 환호성이 들리고, 선수들의 기량에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곤한다. 빠르게 달리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멈춰 서니 보이는 것처럼, 승리지상주의나 무조건 열심히 뛰는 모습이 아닌 즐기는 것,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동안 ‘일상으로의 회복’이 절실했다는 방증이다. 대형사고와 시행착오의 아픔 속에서도 한민족 특유의 ‘끈기’와 ‘역동성’의 자산은 남아 있고, 한국축구 역시 ‘투지’와 ‘승부 근성’의 민낯은 살아 있다. 그렇기에 창의성의 바탕 위에 정책이 활성화되고, 민의의 장이 정상화되며, 거대한 물동량의 발진 속에 코리아 브랜드가 세계로 확산되는 나라, 또 다른 절반의 한 해 출발선에서 신발 끈을 다시 매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황용필 | 국민체육진흥공단 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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