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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중계를 보면 더러 경기 전에 누군가를 추모하며 묵념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넬슨 만델라 같은 위인을 추모하기도 하고 경기장 관리를 해온 직원을 추모하기도 한다. 리버풀을 비롯한 수많은 클럽들이 해마다 4월 중순이면 1989년의 ‘힐스보로 참사’로 인해 사망한 96명의 축구팬들을 위한 추모식을 갖는다. 참사 이후 영국 정부에서 비참하게 죽은 축구팬들을 모욕한 일도 있어서 그 어떤 추모보다 엄숙하게 거행된다.

놀라운 예외가 있었다. 2013년 4월,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가 사망했을 때다. 무조건 출세만 하면 위인 취급을 하는 한국에서는 일찌감치 대처가 어린이 위인전집에 포함될 정도였지만 영국 현지 반응은 극단적이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숱한 개혁을 통해 부강한 나라를 만들었다고 평가했지만 ‘가디언’은 영국의 공동체 정신을 소멸시켜 분열과 갈등의 시기를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인디펜던트’는 서유럽에서 가장 평등한 나라를 가장 불평등한 나라로 만든 장본인이라고 혹평했다.

과연 축구장에서 추모식을 거행할 것인가. 영국 프로축구연맹은 고심 끝에 추모식을 갖지 않기로 했다. 여기에는 역사적인 맥락이 있다.

19세기 중엽, 근대적인 시민 양성을 위한 학교 체육의 일환으로 시작된 영국의 축구가 20세기를 넘어서면서 철강, 항만, 탄광, 제철 등의 공장 도시를 중심으로 노동자들의 장외 문화로 발전한 것이 영국 축구의 유전자다. 이 유전자만으로 영국 축구의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요소가 군살 없는 뼈대임은 확실하다. 독일의 도르트문트, 스페인의 빌바오, 아르헨티나의 보카 주니어스 등의 축구 문화 또한 이 같은 유전 형질의 변주들이다.

이들의 축구 문화를 보면 특정한 도시의 중하위 계급을 기반으로 하여 자긍심 넘치는 다양한 이벤트와 열광적인 서포터스 문화가 전개된다. 이를테면 독일 탄광지대를 배경으로 하는 명문 살케04의 선수들은 그들의 팬들이 일하는 곳, 즉 탄광의 막장으로 자주 내려간다. 프로선수가 실제로 채탄 작업을 하지야 않겠지만, 자기 팬들에 대한 공감과 연대를 표시하는 것이다.

그랬는데, 1980년대 초반 영국 사회가 탄광노조 파업으로 몸살을 앓을 때, 대처는 강압적으로 탄광지역의 노조원(곧 축구팬)을 탄압했다. 비극의 ‘힐스보로 참사’가 터졌을 때도 ‘광팬은 문명 사회의 수치’라는 식으로 몰아붙였다. 영국 프로축구연맹은 이를 기억하면서 대처를 위한 추모식을 갖지 않기로 한 것이다.

최근 안타까운 탄광 사고로 인해 300명이 넘게 사망한 터키에서도 경건한 추모식이 있었다. 명문 갈라타사라이 선수들이 광부들이 일할 때 쓰는 안전구와 헤드랜턴을 착용하고 비통한 표정으로 경기장에 들어섰다. 입장하는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해 임시로 설치하는 천막 터널에는 ‘소마’, 즉 탄광 사고가 난 도시 이름을 새겼다. 비통한 표정을 한 갈라타사라이 선수들이 ‘소마’ 터널에서 빠져나오는 모습은 진정한 공감과 연대의 추모였다.


▲ 월드컵을 선거에 이용은 수치요 ‘즐겨라’는 더더욱 아니다
국가주의 매몰된 응원이 아니라 ‘추모의 응원’도 가능할 것이다


이런 일들이 우리 축구장에서는 불가능한 것일까. 세월호 참사 이후 나라 전체가 깊은 상심으로 기나긴 장례식을 치르고 있는 상황이다. 이 와중에 월드컵은 다가오고 있다. 월드컵은 거대한 이벤트이자 황금알을 낳는 쇼비즈니스 장터이며 강렬한 국가주의의 경연장이다. 이 열기로 인해 자칫 세월호 참사의 모든 것이 잊혀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소리가 높다. 일각에서는 ‘수세’에 몰린 정부·여당이나 축구 열기에 편승하려는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하루빨리 월드컵 열기가 끓어오르기를 바란다는 소리도 들린다.

이런 논란은, 축구공의 무게를 알고 축구장의 명예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수치스러운 얘기다. ‘우매한’ 대중의 심리를 이용해 월드컵 열기를 선거에 이용한다? 아직도 그런 ‘우매한’ 정치인이 있을까. 있다면 그는 필패할 것이다.

물론 불안한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월드컵을 한두 번 치러본 것도 아니고 더러 소중한 것을 잊어버린 적도 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는 전혀 다른 문제이며 전혀 다른 무게를 지니고 있다. 추모의 마음과 응원의 마음이 상반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차범근 해설위원은 서울시청 앞 분향소에서 추모를 한 후 “컨트롤타워가 아니란다. 나는 이 말이 정말 후벼파듯이 아팠다. 그럼 이 분들은 누구한테 울어야 하는지. 국민들의 세금으로 장례를 치르는데 어떻게 비싼 것들을 쓰겠냐며 가장 싼 것들로 고르셨다는 분들. 그 분들에게 부끄럽고 미안하지 않은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라고 토로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차범근 해설위원이 월드컵에서 ‘닥치고 대~한민국’을 외칠 것이라고 상상하기 어렵다. 이미 ‘힐스보로 참사’를 겪은 리버풀 구단을 비롯해 맨체스터 시티, 마인츠05 등 유럽 구단들도 세월호 참사에 깊이 애도하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틀림없이 어떤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국가주의에 매몰되는 응원이 아니라 유가족을 위로하고 서로가 공감과 연대를 다지는 그런 응원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쉽지 않다. 그러나 쉽지 않다는 것은, 그와 같은 방식으로 위로가 될까 하는 조심스러움의 표현이다. 앞으로 한 달, 홍명보 감독이 선수들과 함께 그라운드 안에서 16강을 위해 노력한다면 그 바깥에서 우리는 희미하지만 불가능한 것만은 아닌, 공감과 연대의 광장을 만들어내야 한다.


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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