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부끄러운 얘기지만, 언제부터인지 학교의 교장들 사이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불문율이 있다. “학교 안의 시끄러운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면 절대 안된다” “선생님들과 싸우게 되면 교장이 백전백패 한다” 등이 그것이다. 어떤 조직이건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티격태격 싸우고 내분을 보인다면 그것을 결코 좋은 조직이라 할 수 없고,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이런저런 문제로 싸우게 되면 그 시시비비를 떠나 윗사람의 인간적 도량이나 인품이 먼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게 일반적이다. 한 조직의 수장이라면 어떤 경우에도 참고 포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백번 천번 맞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교육부나 시·도교육청의 연구·시범학교 지정 운영과 관련해 학년 초에 단위학교의 신청을 받는데 그 신청조건은 소속 교원의 50%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교단의 자율적 연구풍토를 조장하고 현장 교육 개선에 이바지하는 등 연구학교의 순기능이 참으로 많아 대다수 학교장들은 적극적으로 해보고 싶어 하지만, 승진 가산점에 관심이 있는 몇 사람을 제외하고 자신들의 업무 가중을 불러올 것으로 판단한 여러 선생님들의 반대가 많기 때문에 학교장의 의욕은 단지 의욕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2016년부터 본격적인 시행을 앞두고 현재 시범단계를 거치고 있는 자유학기제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정책 추진 의지와 소신이 아무리 확고하다고 하더라도 제도에 대한 일부 선생님들의 인식 부족과 반대 또한 만만치 않아, 각 시·도마다 매년 최소한의 학교 몇 개를 선정해 합리적 운영 방안을 찾아보고자 하는 노력마저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선생님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도 제대로 된 성과가 나오기 힘들 터인데, 당국에서 이 학교 저 학교 찾아가 제발 한번만 해달라고 통사정을 해야 하는 경우, 그것이 제대로 된 연구로 이어지기는 힘들 것이다.

얼마 전 자사고 폐지 문제로 한 자리에 모인 자사교 교장들 (출처 : 경향DB)


그렇다면 학교장은 학교 경영에서 누구의 말을 듣고 누구의 뜻에 따라 움직여야 유능하고 훌륭하다는 말을 듣는다는 말인가. 소신을 강하게 밀어붙이면 독선이라 손가락질하고, 조심스레 심사숙고하면 우유부단이라 힐난하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무능이라 비난하니 그 선 자리가 바늘방석보다 더 아플 때가 많다. 교장은 교무를 통할(統轄)하고, 소속 교직원을 지도·감독하며, 학생을 교육한다고 법률이 정하고 있으니 그 권한이 제왕처럼 막강하고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힘을 구사하는 것으로 세간에 비치고 있다. 하지만 법적·사회적 또는 도덕적으로 요구받는 무한책임에 상응하는 실제적 권한은 거의 없다 해도 지나치지 않은 작금의 현실 속에서 학교장의 무력감은 고스란히 학교의 침체, 교육력의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교육적 소신과 경영의욕이 강할수록 현실의 벽 앞에서 깊은 좌절을 맛보아야 하고, 그래서 힘이 빠진 교장이 학교를 앞장서서 끌어가기는커녕 상급 관청과 선생님들 사이에서 눈치나 보며 조용히 임기나 마치는 것을 목표로 보신책을 궁리한다면 과연 우리 교육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너무 많은 권한을 주면 힘들게 이룬 학교 민주화가 옛날로 퇴보하게 될 것이라는 주변의 우려도 있지만, 요즘처럼 명명백백한 세상에 그것은 한낱 기우일 뿐이다. 차제에 모든 학교장들이 확고한 교육적 신념을 가지고 저마다 자율과 책임경영의 기조 위에서 학교를 살려내는 일에 진력할 수 있도록 실질적 권한 강화를 도모해야 할 것이다.


전상훈 | 광주 첨단고 교장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