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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돼~! 안돼~! 정말 안돼~! 음주운전/ 꼬리물기/ 오토바이 인도주행.” 서울 경찰버스 외벽을 장식하고 있는 이 광고 문안을 이제 외울 경지에 이르렀다. 출퇴근 길목에 늘어선 경찰버스 행렬을 지나면서 올여름 내내 강제학습(?)을 한 결과다. 광고 문안이 낯익은 개그맨의 익살스러운 표정과 잘 어울려 애써 읽지 않더라도 저절로 머리에 쏙~ 들어온 덕도 있다. 교통문화를 개선하려는 서울 경찰의 의지와 노력을 존중하는 마음을 담아 되돌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안돼~! 안돼~! 제발 안돼~! 공회전.”

최근 공회전에 대한 규제가 부쩍 강화됐다. 서울은 전 지역에서 휘발유·가스차는 3분, 경유차는 5분을 초과해 공회전을 하다 적발되면 5만원의 과태료를 문다는 걸 운전자는 알 것이다. 지난달 10일부터는 공회전 위반 차량에 운전자가 없거나 중점 공회전 제한장소에서 공회전 위반을 할 경우 사전경고 없이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단속 업무는 서울시 친환경교통과와 각 자치구가 수행한다. 하지만 경찰차는 아무리 공회전을 해도 과태료를 부과할 수 없다. 경찰차·소방차·구급차 등 실무활동 중인 긴급차량은 공회전 제한 대상에서 아예 제외되기 때문이다.

경찰버스가 공회전을 하는 이유는 냉난방 때문이다. 일반 차량도 대기 온도가 5도 미만 또는 25도 이상일 때는 공회전 허용 시간이 10분으로 늘어나고 0도 이하 또는 30도 이상일 때는 공회전 제한 규정 적용을 받지 않는다. 현 제도가 냉난방을 위한 공회전에는 관대한 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회전이 무해하다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나라가 법률과 조례 등으로 공회전을 제한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우선 연료 낭비가 심하다. 차량 연료의 10~15%가 공회전으로 낭비된다고 하니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2000㏄ 승용차 한 대가 하루 5분 공회전을 제한하면 연간 23ℓ의 연료를 절약할 수 있다고 한다. 서울시는 공회전 줄이기를 비롯해 경제속도 준수하기, 트렁크 비우기 등 ‘친환경·경제운전 10계명’을 지키면 차량 한 대당 연간 36만원, 서울시 전체로는 연간 1조700억원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경찰버스가 공회전으로 연료를 얼마나 소모하는지 계산해보았다. 한국기계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12ℓ급 경유버스가 1시간 공회전을 하면 연료가 1.4ℓ가량 소모된다. 에어컨을 틀면 20% 정도 더 소모되니까 대략 1.68ℓ라고 보면 될 듯하다. 경찰버스가 출동해서 대기하는 이유는 ‘집회관리’가 대부분이다. 내가 여름 두 달 동안 매일 지나쳤던 경찰버스 10여대도 그렇다. 이 버스들이 계속 공회전을 했다면 연료 소모량이 얼추 2만5000ℓ, 금액으로는 ℓ당 1600원으로 쳐도 4000만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전 세계가 고민하는 기후변화도 공회전 단속의 절박한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경유는 ℓ당 2.59㎏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고 한다. 앞에서 했던 방식으로 계산하면 경찰은 단지 한 군데의 집회 관리를 위해 두 달 동안 약 65t 상당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셈이다. 참고로 우리나라 교통부문 온실가스 총 배출량은 이산화탄소로 환산해 연간 8500만t에 이른다.

서울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4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미세먼지 줄이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은 자동차 공회전 금지, 나홀로 차량운행 줄이기, 1시민 1나무 심기운동을 통해 국내 미세먼지의 발생 원인을 줄일 수 있다고 시민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출처 : 경향DB)


서울 대기오염의 70%가량은 차량 배기가스가 원인이고 그 가운데서도 최고 원흉이 대형 경유차로 알려져 있다. 경유차의 미세먼지는 세계보건기구(WHO)가 2012년 발암물질 1등급(암 발생에 충분한 증거가 있는 물질)으로 상향조정했을 정도로 인체에 매우 유해하다. 경유 연소 과정에서 발생하는 질소산화물과 탄화수소, 블랙카본(BC) 등은 암 유발, 광화학 반응, 지구 온난화, 성층권 파괴 등 다양한 영향을 일으키기 때문에 각 나라가 강력한 관리 대상으로 삼고 있다. 과도한 공회전은 각종 규제와 지원책을 통해 유해가스와 미세먼지를 줄이려는 서울시와 환경부의 노력은 물론 자동차 업계가 이룬 성과에도 역행하는 일이다. 시민 건강을 위해서, 특히 이를 가장 많이 마실 수밖에 없는 경찰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공회전을 줄일 획기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경찰도 나름대로 고민과 노력은 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미 380V용 외부 배전시설에서 전기를 끌어와 차량 에어컨을 가동하는 시스템을 구축했고, 일반 220V용 무시동 에어컨에 대한 기술적 검토도 하고 있다는 게 경찰청 관계자의 말이다. 더 적극적인 자세로 임했으면 한다. 경찰버스 광고판에 ‘공회전, 안돼~!’를 추가할 수 있을 수준으로!


신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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