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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 | 동화작가



누군가 일을 그르쳤을 때, 너그러운 사람들은 그 잘못을 감싸주느라 이렇게 말하곤 한다. 그래도 열심히 하잖아.


그래서, 열심이라서 그런 만큼 일을 더 심각하게 그르칠 수도 있다. 가만히나 있으면 어쩐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렇게 말하면 성과주의라고 비판받을 수 있을 테지만, 우리 앞에 엄청난 증거가 있다. 그 ‘열심’ 덕분에 4대강은 만신창이가 됐다. 허공으로 날려버린 수많은 공약들처럼, 4대강에 대해서도 마냥 게으름을 피워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4대강을 그야말로 ‘열심’히도 파헤쳐 놓았다.


그리고 그 강줄기 옆으로 나란히 자전거길까지 닦았다. 강물은 썩어가고 강의 생명들도 죽어가는데, 그런 풍광을 감상하며 달리라고 길까지 닦아놓은 것이다. 죽을 만큼 패놓고 어여쁘게 꽃단장시켜준다는 할리우드 영화급 변태남의 행각을 닮았다. 그런 길이 이제 곧 삼천리가 되게 생겼다. 아라, 한강, 남한강, 새재, 낙동강 자전거길을 합한 이른바 국토 종주 자전거길만 해도 무려 600㎞가 넘는다. 지난해 말에는 북한강 자전거길도 새롭게 개통됐다. 여기에 더해, 섬진강과 동해에도 기나긴 자전거길이 생길 계획이란다.


그러나 모 방송사 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전거 보급률은 12%, 그나마 그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활용하는 비율은 2%에 불과하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많지 않거니와 그나마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뜻이다. 정말 필요한 것은, 자전거로 출퇴근하기 위해 목숨 걸지 않아도 되는 환경 조성이다. 그런데 생뚱맞게도 인적 드문 강가를 따라 자전거길을 닦아놓은 것이다.


그 자전거길이라도 활용도가 높다면 불행 중 다행이지만, 현실은 ‘불행 중 불행’ 수준이다. 단적인 예로, 자전거 동호인들은 4대강 자전거길에 대해 ‘여자 혼자는 무리’라고 말한다. 인적도 드물고 기반시설도 미비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 그토록 홍보하고 독려했건만 찾는 사람이 별로 없다. 자전거 교통분담률은 2% 정도라는데, 4대강 자전거길의 휴가분담률(?)은 그보다 더 낮을지도 모른다.


간단히 말해, 지난 5년 동안 ‘삽질’을 했다는 뜻이다. 참 열심히도 삽질을 한 것이다. 

그것도 두루두루 열심히.


(경향신문DB)


모르긴 해도, 새 정권 역시 ‘열심’히 ‘삽질’을 하지 않을까 싶다. 어찌 안 그렇겠는가. 성실과 근면의 기치를 앞세운 국민교육헌장의 정신으로부터 태동한 정권이다. 삽질로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전통 역시 그때부터 비롯되었다. 그때의 고속도로가 오늘날의 자전거길로 면면히 계승되었다. 건국 이래 죽 그래왔으니, 이쯤되면 일국의 전통이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새 정권은 대체 무엇으로 그 전통을 계승하게 될까.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이라는 광고 문구가 으스스하게 떠오르긴 하지만 아무튼, 부디 ‘열심’이기에 앞서 좀 따져 보기 바란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옳은 일이니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고, 옳지 않은 일이니 그만두라고 말하기도 지쳤다. 그러니 부디, 실효성이라도 따져 보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다.


이왕 천문학적인 돈을 들였으면, 그래도 실효성 있는 쪽으로 삽질을 하자는 얘기다. 이왕 수십억원을 들였으면, 특정 인물을 찬양하는 극소수의 방문객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애용할 수 있는 도서관을 만들자는 얘기다. 경제성을 최고의 가치로 신봉하는 분들이니 실효성을 따지는 일은 가능하지 않을까?


바야흐로 음력 설도 지나버린 명명백백한 계사년 벽두, 겨우 이런 소망을 품어본다. 

소박하다 못 해 초라한.


성격이 권력이라는 말이 있다. 언제나 제 시간에 오는 사람은 10분만 늦어도 지청구를 듣지만, 늘 1시간씩 늦어 버릇하는 사람은 ‘고작’ 30분 늦게 왔다고 칭찬을 듣는다. 그건 꼭 개인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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