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 의혹과 관련해 불구속 기소된 김인종 전 청와대 경호처장에게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됐다. 어제 서울중앙지법은 이 대통령 아들 시형씨가 부담해야 할 매입비용 9억7000여만원을 국가에 떠넘긴 혐의(배임)로 재판에 회부된 김 전 처장에게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국민의 혈세로 조성된 거액의 예산을 전용한 고위공직자에게 실형이 내려지지 않은 점은 유감스럽다. 그러나 법원이 이광범 특별검사팀의 수사 결과를 받아들여 핵심 피고인의 위법행위를 인정한 점은 의미가 작지 않다고 본다.


이광범 특검,수사결과 발표 (경향신문DB)


이광범 특검팀은 지난해 11월 내곡동 수사를 종결하며 이 대통령에게 재직 중 불소추 특권에 따른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검찰이 불기소했던 김 전 처장을 기소함으로써 사실상 이 대통령의 책임을 물었다. 최교일 서울중앙지검장이 ‘자백’했듯이 김 전 처장의 배임으로 인한 이익은 이 대통령 일가에게 귀속되기 때문이다. 법원도 판결문에서 “거액의 예산을 부당하게 집행함으로써 대통령 일가에게 거액의 재산상 이익을 제공했다”며 이 대통령 일가가 배임행위의 ‘수혜자’임을 분명히 했다.


우리는 재판부가 이 대통령의 책임을 우회적으로 지적한 부분에 주목한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당초 대통령의 퇴임 후를 대비한 경호부지 매입 업무만 맡아오던 경호처가 ‘대통령의 특별 지시’에 따라 ‘전례 없이’ 사저부지 매입이라는 사적 업무까지 맡아 양 부지를 일괄 매입하는 바람에 생긴 일”이라고 판단했다. 이 대통령은 특검 수사기간 연장 불허와 압수수색 거부 등으로 법망을 빠져나가는 데는 성공했으나, 법원의 판단으로 정치적·도덕적 타격을 면치 못하게 됐다. 김 전 경호처장을 비롯한 사건 관련자 전원에게 면죄부를 준 검찰도 통렬히 자성해야 마땅하다. 


가장 참담한 것은 이 대통령이 내곡동 특검 수사 종료 이후에도 사과 한마디 없이 버티고 있다는 점이다. 의혹의 진상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자성하기는커녕 ‘셀프 서훈’을 하고 ‘국정운영 성과’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제작·방송할 것이라고 한다. 뻔뻔하고 몰염치하기 이를 데 없다. 


법원의 판결은 미완으로 끝난 내곡동 사건 수사를 재개해야 할 필요성을 웅변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내곡동 터를 직접 찾아 ‘OK’했다는 김 전 처장의 언론 인터뷰 등 재수사에 필요한 정황도 충분한 터다. 이 대통령은 11일 뒤면 청와대를 떠나 자연인으로 돌아간다. 더 이상은 법망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