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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기 | 경북대 교수·사회학
지금 전국의 국립대학은 벌집을 쑤셔놓은 것처럼 어수선하다. 총장 직선제 폐지를 둘러싼 교육과학기술부와의 갈등이 빚어낸 후유증 때문이다. 교과부는 지난해 초 ‘교육공무원임용령 일부 개정령안’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킴으로써 단과대학장 직선제를 폐지시키고 총장이 직접 임명토록 해 파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지금의 후유증은 그때 이미 충분히 예견된 일 중 하나였다.
교과부가 총장 직선제 폐지를 밀어붙이고 있는 명분은 간단하다. 직선제의 폐해가 심하다는 이유에서다. 현실성 없는 공약의 남발과 학내 구성원의 파벌 형성 등으로 선거가 과열되고, 보직을 공에 따라 나누어 먹어 학내 분위기를 크게 해친다는 역기능이 직선제 폐지의 명분으로 등장했다. 이에는 확실히 일리가 있다. 왜냐하면 과거의 대학에서 총장에 뽑힌 이들과 보직에 눈먼 아부쟁이들이 이런 소리를 들을 짓을 해온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해서 필자도 그런 것에 염증을 느껴 솔직히 직선제 폐지를 염두에 둔 적도 있다. 하지만 직선제가 절대로 폐지돼서는 안되는 몇 가지 중요한 이유 때문에 그런 생각을 떨칠 수밖에 없다.
대학 총장 직선제 유지 기자 회견(1996년) I 출처:경향DB
첫째, 민주주의 국가라면 어떤 선거도 나쁜 선거란 없다. 선거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폐단 때문에 선거를 없앤다면 그것은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다. 국회의원 선거 과정이 혼탁하다고 해서 선거를 없앨 수 없듯이 대학 현장의 직선제도 없앨 수 없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교육과 실천을 위해 하물며 초등학생도 반장 선거를 하는데 교수들이 선거를 못하게 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둘째, 직선제를 없앨 때의 폐단이 시행했을 때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선출되지 않은 학장이 총장의 거수기 노릇만을 톡톡히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출되지 않은 총장은 지성인의 수장 노릇보다는 정부 시책의 주구 노릇을 할 공산이 더 커진다. 총장이 되기 위해 학내 구성원보다는 정치권이나 정부에 줄을 대 낙점 받고 싶어 안달하는 이들이 총장이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셋째, 총장 직선제 폐지의 불순한 목적 때문이다. 정부 시책에 입도 뻥긋 못 하고 국으로 입을 다문 채 교과부의 꼭두각시 노릇이나 할 총장을 배출하려는 목적에는 곧 그를 수장으로 삼고 있는 평교수들조차 그렇게 만들고 싶어 하는 간교한 꼼수가 숨어 있다. 결국 사회 최고의 지성인으로서 위정자들의 잘잘못을 따져야 할 교수들의 사회적 책무를 못하게끔 교수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자물쇠를 채우는 잠재적 기능을 직선제 폐지가 지니고 있기에 결코 직선제가 폐지되어서는 안된다. 사회의 건전한 비판은 언제나 작동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과부는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불도저처럼 총장 직선제 폐지를 밀어붙이고 있다. 그런데 그 방법이 치사하기 그지없다. 알량한 돈 몇 푼(교육역량 강화사업)을 갖고 대학들을 위협해 직선제 폐지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받아들이게 한 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 가뜩이나 재정이 열악한 국립대학으로선 그 정도의 지원도 절실해 백기를 들 것이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교과부가 치밀하게 기획한 일이다. 그러나 몇몇 국립대학이 이에 끝까지 저항했고, 그 결과는 올해 사업 선정에서 해당 대학의 탈락이었다. 도대체 총장 직선제와 교육역량 강화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어 이런 보복성 결정을 교과부가 내리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그 사업비의 대부분은 장학금 등 학생들을 위해 쓰인다. 장학금을 볼모로 삼아 교과부가 이런 일을 자행하고 있다는 것을 국민들은 알까?
지난달 말 전국 국공립대 교수들은 이주호 교과부 장관의 불신임안을 90% 이상의 찬성으로 가결했다. 이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지 따져보고 반성하는 장관이었으면 한다. 어쨌든 개인적으로 백기투항을 하지 않은 대학에 몸담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기만 하다. 아, 국립대학의 봄날은 언제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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