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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근 기획에디터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지난 총선 막바지에 광주에 출마한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와 대구에 출마한 김부겸 민주통합당 후보를 불러내 모종의 정치 행사를 가지려 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런 이벤트는 안 원장이 그동안 비판해온 한국 정치의 낡은 행태의 단면을 스스로 보여주는 것으로, 현 시점에서 안 원장의 정치의식 수준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가 생각하는 새로운 정치란 무엇인가. 아무도 그것을 모른다는 데 안 원장 문제의 핵심이 있다.
정치와 사회 현안에 대해 발언할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다. 더구나 안 원장처럼 여론조사 지지율이 50% 안팎에 이르는 명망 있는 인물이라면 더욱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의무도 있다. 여기에 국민이 현역 정치인이나 정당에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정치 행보에 대한 1차적 책임은 그가 아니라 정치인과 정당에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그럼에도 안 원장의 지금 행보를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한둘 아니다. 원래 선거는 후보가 어떤 세력을 대표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이를 통해 국민의 지지를 얻어 당선되면 약속을 실천하는 일련의 정치 과정이다.
안철수의 대권 도전 예상 시나리오 I 출처:경향DB
그런데 안 원장을 보면 그가 우리 사회의 누구를 대표하고 어떤 정치를 펼치겠다는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대통령 후보를 꼼꼼히 검증한 뒤 선택하는 것이 민주주의 절차의 필수인데, 안 원장에 대해 국민이 알고 있는 얘기는 대부분 간접 정보뿐이다. 결과적으로 그의 애매한 행보가 국민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있는 셈이다.
더 심하게 말하면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이쪽 저쪽 세력을 모아 대선에서 이기겠다는 심산인 것 같다. 여느 사람 같았으면 자신의 실력은 내보이지 않은 채 이미지로만 대통령에 당선되어 보겠다는 안이한 발상이라고 비난받기 딱 좋은 상황이다.
이당 저당의 장점을 취해 제3지대에서 세력을 구축하려는 안 원장의 태도도 썩 미덥지 않다. 지난 4·11 총선에서 투표에 불참한 절반에 가까운 중도세력의 유권자를 겨냥한 외연 확대라고 하지만, 이는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대선 출마 결심을 미루는 그의 행보가 가뜩이나 취약한 우리 정치의 체질을 더욱 약화시키고 있다. 사실 안 원장의 인기는 기성 정치와 정당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거나 조롱하는 데서 시작됐다. 그것은 현대정치가 정당정치라는 점에서 안 원장이 본의 아니게 한국 정치를 후퇴시키는 역할만 하고 무대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자아낸다. 안철수 현상이 안고 있는 위험성이다.
제3지대 구축은 현실적으로 실현이 어렵다.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는지도 의심스러운 여론조사 지지율을 믿고 애매한 행보를 보이다 외면당한 사례를 국민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정몽준 의원은 진심에 없는 노무현 후보와의 단일화를 추진하다 선거 전날 밤 파기해 대선판도를 어지럽혔다. 민주당과의 후보 단일화를 거부하고 제3의 후보로 대선을 완주한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 역시 정치에 새바람을 불어넣는 데 실패했다. 정운찬 전 총리와 박세일 교수의 지난 정치행보도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안 원장의 측근이라 불리는 인물들도 그에 대한 불신을 더하고 있다. 그가 정치에 공식 입문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안 원장을 주위에서 돕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우리는 도통 알지 못한다. 대통령을 선택할 때 유권자들은 후보 하나만 보지 않는다. 후보를 둘러싸고 있는 보좌진의 수준과 역량도 한 표를 행사하는 데 중요한 판단의 근거가 된다. 대통령 혼자 국정을 운영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보좌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도 당연히 검증해야 한다. 안 원장의 경우, 멘토라고 하는 몇몇 인사가 거론되지만 그들 상당수는 정치인이 아니다. 그 외 다른 보좌진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이 상태에서 안 원장이 대통령이 되면 그가 어떤 정치를 펼지 국민으로선 예측할 방법이 없다.
변죽을 울리면서 이리저리 재는 모습은 우리가 안 원장에게 기대하는 바가 아니다. 현실정치가 못마땅하면 정치판에 직접 뛰어들어 다른 정치인보다 더 뛰어난 성과를 내면 된다. 그것으로 좋은 평가를 받으면 대통령으로 나서고, 그렇지 않으면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게 정도이다.
이런 점에서 “이제 대세론이라는 것은 없다. 말하자면 뿌린 만큼 거두는 것이다”라는 심상정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의 말은 백번 옳다. 정밀하게 관리된 인기나 반사이익만 보고 유권자들이 자신을 대통령으로 뽑아줄 것으로 생각하면 그것은 오산이다. 이제 창당을 하든지, 기존 정당에 들어가든지는 안 원장의 몫이다. 깔끔하게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다면 대학에 남는 것도 그의 선택이 될 수 있다. 안 원장은 지금도 정치참여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대선 과정의 검증에 대비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도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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