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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 사퇴 파동이 남긴 것 가운데 하나는 일제 식민지배를 미화하는 따위의 왜곡된 역사인식을 가진 인물은 책임 있는 자리를 맡아서는 안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새삼 확인됐다는 사실이다. 문씨는 당시 “총리 후보자가 아닌 기독교인의 관점에서 한 말” 등의 구차한 변명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일제 강점 외에 무료급식, 성 소수자 문제 등에 대해서도 건강한 상식과는 동떨어진 극단적 편견을 보인 그를 사회 구성원의 절대다수는 용인하지 않았다.

우리가 문씨의 사례를 재삼 거론하는 까닭은 KBS 이사장으로 거론되는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역시 문씨와 대동소이한 역사관과 현실 인식을 갖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위원회에서 KBS 이사로 추천된 이씨는 이사진 중 최연장자인 데다 박근혜 대통령과도 가까워 신임 이사장이 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고 한다. 편향되고 비뚤어진 역사관을 가진 이씨가 공영방송 최고 의결기구 수장이 된다는 것은 청와대로 상징되는 정치권력과의 유착으로 사장이 불명예 퇴진한 뒤 방송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는 KBS의 구성원들에게 “이제 조용히 하라”는 일종의 협박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KBS가 명실상부한 공영방송으로 새로이 태어나기를 염원하는 시민사회에 대한 배신이기도 하다.

작년 5월 한 학술회의에서 당시 아산정책 연구원 이사장을 맡고 있는 이인호 씨가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뉴라이트 계열 학자인 이씨는 이명박 정부 시절 친일·독재 미화 논란을 낳은 ‘대안교과서’의 감수를 맡았고, 지난해 9월에는 친일 미화라는 거센 비판을 받았던 교학사 역사 교과서를 옹호하기도 했다. 그뿐이 아니다.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 등의 망언이 담긴 문씨의 교회 강연에 대해서도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에 감동했다”고 발언했다. 반면 문씨 강연을 단독보도한 KBS를 겨냥해서는 “이런 나라에 살기 싫다”고 했다고 한다. 식민지배를 미화하는 망언에 감동받고, 한국기자협회를 비롯한 수많은 언론단체의 보도상을 휩쓴 KBS 보도에는 증오를 퍼붓는 이씨가 KBS 이사장으로서 보여줄 행보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문씨가 그랬듯이 이씨도 스스로 물러나야 마땅하다. 이씨가 사퇴를 거부한다면 방통위는 이사 추천을 철회해야 한다. 문창극 파동 당시 “대한민국 총리가 아니라 일본의 아베 신조 내각에서 일해야 할 인물”이라는 우스개도 나왔다. 이번에 “이씨는 KBS가 아니라 일본 NHK로 가야 할 사람”이라는 비아냥까지 쏟아진다면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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