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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제도 개편 때면 회자되는 교육정책이 있다. 전두환 정권이 1980년 전격적으로 단행한 ‘7·30 교육개혁 조치’다. 당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고교 재학생의 학원 수강과 과외를 금지시켰다. 대입제도의 큰 틀도 바꿨다. 예비고사·본고사를 없애고, 학력고사와 고교 내신성적만으로 신입생을 선발하게 했다. 학력고사 제도는 획일적인 국가표준 대입정책의 상징이라는 비판이 주류를 이룬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도 꽤 있다. 주로 학력고사 세대인 40~50대 학부모들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입제도가 지금처럼 복잡하지 않고 단순했기 때문이다.

‘교육 사다리’가 유지된 대입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1994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도입되기 전까지 시행된 학력고사 제도에선 ‘개천에서 난 용’들이 많았다. 사교육이 전면금지돼 저소득층 자녀들의 대학 진학률이 크게 높아졌던 것이다. 지방에 있는 고교들이 이른바 ‘SKY대’ 합격자 수에 따라 명문고 대접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학력고사 제도는 숱한 폐단을 낳았다. 고교와 대학의 서열화가 조장됐고, 수험생들은 ‘점수따기 경쟁’으로 내몰렸다. 단순한 암기 위주의 4지선다형 시험은 수험생들의 사고력과 응용력을 측정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부 수립 이후 대입제도의 큰 틀은 16차례나 바뀌었다. 역대 정권이 사회적 합의 없이 정치적 편향에 따라 대입제도를 바꾼 탓에 수험생은 언제나 ‘실험 대상’이 돼야 했다. 16차례나 바뀐 대입제도 가운데 학력고사 제도를 아직까지 거론하는 학부모들이 적지 않은 것은 현행 대입제도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반작용일 수 있다. 무엇보다 현행 대입제도가 공정성 논란을 빚게 된 것은 ‘깜깜이 전형’ ‘금수저 전형’으로 불리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 비중이 지나치게 확대된 탓이 크다.

지난해 대입에서 내신성적 위주인 수시 학생부교과전형은 54.1%, 소논문이나 동아리활동, 수상경력 등 비교과를 중시하는 학종은 32.3%를 차지했다. 게다가 서울 주요 15개 대학의 학종 비중은 61.3%에 달했다.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학생의 잠재된 역량을 발굴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된 학종이 되레 사교육을 유발하고 있다는 비판은 ‘학종 폐지, 정시 확대’의 주된 논거가 되고 있다.

교육부가 지난 11일 현재 중학교 3학년에 적용될 대입제도 개편시안을 국가교육회의로 넘기기 전 더불어민주당 초·재선 의원들은 자체 연구를 거쳐 ‘대입제도 개편안’ 보고서를 내놨다. 학종을 폐지하고, 모든 대학이 수능, 내신, 수능+내신 등 세 가지 전형으로 선발 인원을 각각 동일한 비율(1 대 1 대 1)로 조정해 시행하자는 게 골자다.

여당이 내놓은 보고서에 대해 보수성향의 교육단체는 대체로 공감하면서 “현재 20%대로 떨어진 수능 위주의 정시 비중을 50%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진보성향의 교육단체는 “학종 폐지, 정시 확대는 공교육 정상화에 역행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대입제도 개편을 두고 진영논리마저 작동하지 않는 모양새다.

대입제도 개편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푸는 것보다도 어려운 난제일 수 있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 대학 등이 자신이 처한 입장에 따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기 때문이다. 학종을 폐지하고 정시를 대폭 확대한다고 해서 대입제도의 공정성이 확보되리란 보장은 없다. 학종을 폐지하면 일반고 학생들의 대학 진학 문이 좁아질 수 있다. 정시 비중을 대폭 확대하면 고교 교육의 내실화를 기할 수 없는 데다 수험생을 점수로 줄을 세우는 학력고사 제도의 폐해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학종과 정시의 비율 조정은 불가피하지만 특정 전형으로 쏠림이 심화되면 또 다른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는 것이다.

교육부가 국가교육회의로 넘긴 대입제도 개편시안을 조합하면 100개가 넘는 전형이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핵심 쟁점은 수시와 정시 비율 조정, 수능 절대평가 과목 확대 여부, 수시와 정시 통합 등으로 좁혀질 가능성이 높다. 신인령 국가교육회의 의장은 “오는 8월 초까지 단순하고 공정한 대입제도 개편 권고안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역대 정부도 똑같은 취지에서 대입제도를 바꿨지만 여론무마용 땜질식 개편을 하는 수준에 그쳤다.

세상에 진선진미(盡善盡美)한 제도가 없듯이 모든 교육주체를 만족시킬 대입제도 개편의 정답은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부모의 경제력과 사교육이 아닌 ‘공교육의 힘’이 통할 수 있는 대입제도의 새 틀을 짜는 일이다. 공론화 과정을 거쳐 대입제도 개편안을 마련할 이번이 교육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시간이 많지 않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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