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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병(閱兵)은 원래 부대를 정렬시킨 뒤 전투태세를 점검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열병과 분열(分列)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열병은 정렬해 있는 부대의 앞과 뒤를 지휘관이 돌면서 군기 등을 살피는 방법이다. 반면 분열은 정렬해 있던 부대가 지휘관을 지나쳐 행진함으로써 군기를 검열한다. 2015년 9월 중국의 70주년 전승절 기념 열병식처럼 대규모 열병식에서는 이 두 가지를 다 한다. 하지만 대개의 열병식은 지휘관이나 귀빈이 도열한 장병을 사열하는 형태로 거행된다.
부대의 전투태세를 검열하는 열병이 의전용으로 활용된 것은 고대부터다. <손자병법>의 저자로 알려진 손무가 오왕 합려의 왕궁에서 군기를 세우는 고사에서 그 흔적이 보인다. 궁녀들을 상대로 제식훈련을 하던 손무가 명령에 따르지 않는 왕의 후궁 두 명의 목을 베었다. 그러자 부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는 것이다. 열병식이 이미 군주를 향한 군대의 충성을 과시하는 용도로 전용되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열병식은 중세 때 서양에서 국왕이 다른 나라 국왕에게 도열한 군대를 보여준 데서 출발했다. 장엄한 군기로 전의를 상실케 하면서 상대국을 적대시하지 않는다는 뜻도 담는 일석이조의 이벤트였다. 이것이 발전하여 오늘날 군 의장대 사열은 정상외교에서 빠질 수 없는 의전이 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국군 의장대를 사열한다. 70년 넘게 서로 총부리를 겨눈 남북의 군통수권자가 함께 국군을 사열하는 모습이 기대된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의 의장대 사열을 반대한다. 육해공군을 대표하는 의장대가 김 위원장에게 ‘받들어총’ 하는 것은 충성맹세가 아니냐는 주장이다.
냉전 시대 미·소 정상들도 상대국 군대를 사열했다. 2000년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북한군을 사열했다. 북한군 사열은 받아놓고 남한 군대는 사열하지 말라는 것은 상호주의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 미국 대통령이 인민군 의장대를 사열할 날이 곧 올 수도 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려 한다. 과거의 적의로 살 수 없는 세상이 오고 있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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