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봄이 책 읽기에 좋은 계절은 아닐 것이다. 눈 닿는 곳마다 꽃이 안 핀 데가 없고, 햇살 맑지 않은 데가 없고, 나뭇잎들은 갓 씻어놓은 듯이 온통 푸르다. 그야말로 온통 봄햇살에 봄나물에 봄꽃들이다. 책을 볼 시간이 있으면 오히려 그 시간에 이 봄을 즐기는 것이 마땅할 듯한데, 요새 봄은 봄이 아니라 툭하면 재앙이다. 시간이 있어도 밖에 나갈 수 없는 날, 분을 풀듯이 읽어보는 책으로 추리소설은 어떨지.

로렌스 블록이 쓴 <800만가지 죽는 방법(Eight million ways to die)>이라는 소설이 있다. 몸을 파는 여자들이 연쇄적으로 죽고, 사립탐정인 주인공이 그 살인마를 추적하는 내용의 이 소설은 줄거리만으로만 보면 추리소설의 기본 문법을 그대로 좇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왜 제목이 800만가지 죽는 방법일까. 연쇄살인마가 엄청나게 다양한 살인 기술을 구사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며 이 소설을 펼친다면 그야말로 엄청난 오산이다. 이 소설의 무대는 뉴욕이고 소설은 당시 뉴욕에 살고 있던 800만명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800만명의 사람들에게 800만가지의 죽음이 있다는 뜻, 즉 모두에게는 자신만의 죽음이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따진다면 지구 전체의 인구를 들어 75억가지 죽는 방법이라는 제목이 나올 수도 있겠다.          

그러나, 무대가 뉴욕이라는 것에 상징성이 있다. 세계의 중심인 그 도시에서는 고급 콜걸들이 잔인하게 살해를 당하고, 소박한 꿈을 꾸는 평범한 부부가 오랜 꿈을 이뤄 마련한 자기 집에서 강도를 당해 죽고, 노숙인들은 쓰레기통에서 주운 겉옷을 가지고 다투다 서로를 칼로 찔러 죽이고 죽고, 길거리를 걷던 사람은 이유없이 총을 맞아 죽는다. 거리에 버려진 티브이세트가 너무 멀쩡해 그걸 집으로 가지고 왔다가 그 티브이세트 속의 폭탄이 폭발해 죽는 사람도 있다. 그 누구도 그렇게 죽어야 할 이유가 있을 리 없다.

소설에 나오는 장면은 아니지만 학교에서 벌어지는 총기난사도 있다. 아이들이 이유도 없이 죽는다. 그냥 차를 몰고 돌진해오는 사람도 있다. 쇼핑을 나갔다가, 점심을 먹으러 가다가, 그냥 거리에서 죽는다.

그러니 누구를 원망해야 하나. 소설 속에서는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까 이 도시가 미쳤다는 거지.” 소설 속에서 사람들의 죽음은 운명처럼 보인다. 미친 도시에 살고 있는 운명, 미친 시대에 살고 있는 운명. 그러나, 반복되는 폭력, 운명이 되다시피 한 폭력의 배경에는 세계의 자본, 그리고 그 자본과 맞물려 있는 정치가 깔려 있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아도 실제로는 그렇다. 뉴욕, 도쿄, 베이징, 어디나 그렇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은 이 거대한 자본과 정치의 메커니즘에 대해 무력할 수밖에 없다. 방관자가 되기를 원한 적은 없지만 그렇게 되는 것이 운명이다.

이 소설은 매튜 스커더 시리즈 중의 하나인데, 이 무뚝뚝한 사립탐정이 구제불능에 가까운 알코올 중독자인 것 역시 매우 상징적으로 보인다. 술을 마시는 데에도 800만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물론 800만 모두가 술을 마시는 건 아니고 또한 알코올 중독자가 되는 건 아니지만, 중독자들에게는 그들만의 절망적인 사연이 있다. 소설 내내, 범인을 쫓는 내내, 매튜 스커더가 금주를 위해 들이는 각고의 노력은 너무 현실적이어서 마음이 답답해질 지경이다. 소설 내내 술 대신 커피를 어찌나 많이 마셔대는지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커피 마실 생각이 뚝 떨어졌다. 사흘째 술을 마시지 않은 밤, 닷새째 술을 마시지 않은 밤, 또 일주일째, 매튜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래서, 뭐? 뭐가 달라지는데?

금주모임에 갈 때마다 커피 잔만 손에 든 채 한 번도 자기 사연을 말하지 않던 매튜 스커더가 마지막 장면에서 왈칵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이 나온다. 내 이름은 매튜입니다. 나는 알코올 중독자입니다. 그렇게 말해놓고는 운다. 그가 말없이 우는데 왜 내가 우는 것 같나. 그가 말하지 않은 사연 속에 내 이야기도 묻어 있다고 생각된 모양이다. 미국, 뉴욕, 백인남자, 사립탐정, 심지어 알코올 중독자, 나하고의 공통점이 뭐길래.

서울의 인구는 천만, 그러니까 천만가지의 죽는 방법이 있다. 그리고, 그 천만명 중에는 술마시는 사람들이 있고, 자기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한 채 왈칵 눈물만 쏟는 사람들이 있다.       

다시 말하면 천만가지의 사는 방법들이 있다. 성공한 삶도 있고 실패한 삶도 있겠으나, 그중의 어느 쪽에도 끼지 않고, 그저 그렇게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대부분일 것이다. 늘 돈 걱정을 하고, 미래 걱정을 하고, 건강 걱정을 하고, 그러면서도 순간순간 행복하고, 고맙고, 이만하면 괜찮다 싶기도 하고, 그런 삶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초라하지만 누구에게 죄지은 적은 없는 삶이다.      

당연히 그중의 어느 삶도 모욕당해도 괜찮은 삶은 없다. 누군가가 던진 물컵의 물을 뒤집어써도 좋은 사람은 없고, 고용주라는 이유로 입에 담지 못할 그의 욕설을 들어도 좋은 사람은 없다. 본인 욕으로 부족해 부모를 거론해 욕을 한 고용주도 있었다. 돈다발을 미리 던져놓고 폭력을 휘둘렀던 재벌도 있었다. 그래도 되는 사람은 없다. 절대로 없다.

전직 형사였고 현직 사립탐정인 매튜 스커더는 습관처럼 신문의 사건사고란을 읽는다. 그러고는 매일같이 우울해진다. 어찌 안 그럴 수 있겠나. 세상이 돌아가는 대로 놔두고 그냥 그런 일은 다 무시하고 살면 안되겠느냐고 묻는 지인에게 매튜가 하는 말이다. 그럴 수는 없다면서.

왜냐하면 사람이니까.

맑은 봄날, 먼지가 낀 봄날, 비가 오는 봄날, 그래도 어쨌든 세상은 돌아간다. 그 세상은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존중받는 삶으로 채워진 세상이어야 한다. 이게 뭐 그리 대단한 소망이겠나. 그게 왜 소망이 되어야 하겠나. 당연한 일이 당연하게 돌아가는 사회가 되기 위해 이 봄에도 벌해야 할 사람과 삶이 너무 많다.

<김인숙 소설가>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