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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과 원희룡 제주지사는 여러모로 닮은꼴이다. 차기 대권주자에 이름을 올린 이들 둘은 요즘 고민거리도 비슷하다. 서울과 제주를 대표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의 인허가 문제로 연일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다. 자칫 잘못했다간 자신의 정치생명에 덫이 될 수 있는 문제다.

원 지사는 제주 드림타워와 한판승부를 벌이고 있다. 드림타워는 한·중 합작으로 짓는 56층짜리 제주의 최고층 빌딩이다. 롯데관광개발과 중국 최대 부동산개발회사인 뤼디그룹(綠地集團)이 2009년 허가를 받아 호텔·콘도를 짓는 1조원짜리 공사다. 원 지사는 취임하자마자 이 공사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218m짜리 나홀로 빌딩이 제주의 자연경관을 해친다는 이유에서다. 건물 높이를 낮추지 않으면 공사를 할 수 없다며 막무가내다. 어찌 보면 횡포에 가깝다. 전임 지사가 멀쩡하게 허가한 사업을 뒤늦게 딴죽을 거는 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 지사는 “잘못된 건축 허가는 지사 직권으로 취소할 수 있다”며 강경한 입장이다. 22층이 최고층인 제주에서 56층짜리 건물이 들어서면 도시의 흉물이 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제주 건물은 제주다워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언뜻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천혜의 자연경관을 가꾸고 보존하는 것은 지사의 책무다. 원 지사의 ‘도발’엔 제주 도민들의 반중(反中) 정서도 바닥에 깔려 있다. 제주에는 중국 돈이 흘러 넘친다. 지난 5년 새 중국 자본이 사들인 제주 땅 면적이 300배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외자유치가 만능이고 법에 저촉되지 않으면 응당 건축허가를 내줘야 한다는 지금 세태를 감안하면 신선한 충격이다. 지역 여론도 비교적 그에게 우호적인 편이다.

박 시장은 정반대 경우다. 서울시는 123층짜리 잠실 제2롯데월드의 인허가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다. 서울의 랜드마크를 짓겠다는 롯데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의 숙원사업이다. 제2롯데월드는 20년 된 서울시의 해묵은 과제다. 그간 건축허가가 지연된 것은 교통처리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어떻게 허가를 내줬는지 지금도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다. 하지만 공사 도중 안전사고가 잇따르면서 주객이 전도됐다. 착공 이후 공사장 주변 석촌호수의 수위가 낮아지고 싱크홀(도로 함몰)이 빈발하면서 안전문제가 부각된 탓이다. 어느새 제2롯데월드의 교통대책은 서울시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더 심각한 문제는 서울시의 일처리다. 현재 쟁점사안은 공사가 진행 중인 본건물 외에 주변 3개동 건물의 가사용 승인 여부다. 안전에 대한 시민 불안이 증폭되자 서울시는 자체 점검을 통해 80여개 항목의 미비점을 적발한 뒤 롯데에 통보했다.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승인을 내줄 수 없다는 논리다. 하지만 롯데가 “지적 사항을 모두 해결했다”고 하자 박 시장은 곤란한 처지가 됐다. 시민들은 “불안해서 못살겠다”고 아우성인 데 반해 더 이상 승인을 막을 명분이 없어진 셈이다. 이때 등장한 편법이 공사현장 시민공개다. 듣도 보도 못한 ‘프리오픈’이라는 행사를 동원해 시민들에게 안전성을 검증받겠다고 나선 것이다.

강동 송파환경운동연합 등 시민 연대 회원들이 3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싱크홀. 교통대란. 변전소 안전 등 시민들의 불안감 해소에 정부가 적극 나설 것을 요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인허가는 서울시의 고유 권한이다. 공권력 행사는 공신력이 생명이다. 시민 의견을 물어 공권력을 행사하겠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 있는가. 안전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지만 이를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것은 서울시의 책무다. 이를 회피하는 것은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시민들에게 현장을 개방한 뒤 문제가 생기면 대신 책임지라고 할 것인가. 롯데 입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검증 결과 문제가 없다면 승인해주는 게 순리다. 그게 행정이다. 이에 대한 책임을 시민들에게 떠넘기는 것은 무책임하다.

서울시 주변에서는 요즘 “박 시장이 온통 대권 꿈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한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차기대권 주자 중 박 시장 지지도는 여야를 통틀어 1위다. ‘큰 실수만 없다면…’이라는 박 시장의 심정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더구나 제2롯데월드 인가로 ‘반재벌’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해소할 수 있다면 일석이조라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과연 그럴까.

정치 지도자라면 원칙과 명분이 뚜렷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 원 지사는 ‘제주다운 제주’가 아니면 욕을 먹더라도 타협하지 않겠다는 명분이라도 있다. 그렇다면 박 시장은 뭔가. 번지수를 잘못 짚은 탓에 제2롯데월드는 지금 산으로 가고 있다. 서울시민들은 이에 대한 박 시장의 소신과 원칙이 뭔지를 묻고 있다.


박문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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