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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시·도 교육감의 자사고 지정 및 지정취소 권한과 관련해 교육부가 ‘자율형사립고등학교 지정 협의에 관한 훈령’의 해당 조항을 규제로 규정하고 정비 작업을 해온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고 한다. 훈령은 교육감은 자사고 지정이나 지정취소 시 교육부 장관과 사전협의하고, 장관이 부동의할 경우 지정취소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진후 정의당 의원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아 그제 공개한 ‘2014년 교육부 규제 완화 현황’에 따르면 교육부가 올해 말까지 정비할 규제에 이 두 가지가 포함돼 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교육부는 지난 5일 시·도 교육감이 자사고·특목고·국제중을 지정이나 지정취소할 때 교육부 장관의 사전동의를 받도록 하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사전협의와 부동의를 규제라고 해서 손질하기로 해놓고 되레 사전동의라는 더욱 강력한 규제를, 그것도 훈령보다 상위법인 시행령에 못 박은 것이다.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조희연 서울교육감이 4일 서울시 교육청 기자실에서 서울지역 자율형 사립고 평가결과와 제도개선 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교육부의 규제 정비는 지난 3월20일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제1차 규제개혁장관회의를 계기로 급물살을 타고 진행됐음은 이미 알려진 바다. 박 대통령이 주도하는 ‘규제개혁’에 발맞춰 규제개선추진단을 꾸리는 등 요란한 과정을 거쳐 지난 8월 올해 삭제할 48개 규제를 1차 확정했던 터다. 그런데 교육부가 갑자기 입장을 180도 바꾼 것은 지난 6·4지방선거에서 자사고 폐지를 공약하고 당선된 이른바 진보교육감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이유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훈령 삭제를 통해 교육자치를 강화하려다 뒤늦게 부랴부랴 시행령을 바꿔 진보교육감의 자사고 지정취소를 원천봉쇄하려는 의도가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훈령 개정이 규제 완화 차원이라기보다 규정 내용을 훈령보다 상위의 대통령령에 근거를 두기 위한 규제 정비의 일환이라는 교육부의 해명은 옹색하기 짝이 없다.

자사고 평가와 관련한 작금의 논란은 훈령 정비 계획과 시행령 입법예고의 모순에서 보듯 그 원인을 교육부가 제공하고 있다. 거듭 말하지만 교육부는 실패한 자사고 정책에 연연할 때가 아니다. 현행 법체계에서 자사고 평가는 자치사무든 국가위임사무든 교육감의 책임이라는 게 많은 전문가의 주장이기도 하다. 정치적 이해와 진영 논리에 휘둘려 백년대계를 그르치는 일에 교육부가 앞장선다면 그보다 더 딱한 일이 없을 것이다. 교육부는 코미디 같은 일을 하고 코미디 같은 변명을 하는 일이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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