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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참여정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했다. 정부는 서울 강남 재건축 아파트 가격이 꿈틀거리자 즉각 시장에 개입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부동산 정책 실패 경험과 이에 대한 반성이 본능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검찰 개혁도 과거와 사뭇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윤석열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하고 검찰 내 ‘우병우 사단’을 솎아내더니 올해 정기국회 법안 통과를 목표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을 밀어붙이고 있다. 속전속결·전광석화라 할 만하다. 경제 분야에서는 ‘재벌 저격수’로 불리는 김상조 교수를 공정거래위원장에 발탁해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을 단속하는 등 이미 적지 않은 성과를 냈다. 북한의 핵 실험 같은 대형 악재 속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이 60~70%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는 비결일 것이다.

교육부가 대학수학능력시험 개편을 1년 유예한다고 발표한 지난달 31일 서울의 한 중학교 학생들이 복도를 지나가고 있다. 수능이 개편되는 시기가 2022학년도로 미뤄지면서 지금의 중학교 2학년생들이 개편된 시험을 치르는 첫 세대가 됐다. 연합뉴스

그러나 교육 개혁은 답답하고 더디기만 하다. 교육의 본령과 거리가 먼 사건·사고 뒷수습에 허둥대는 모습이 참여정부 당시 교육 난맥상을 떠올리게 한다. 2021학년도 수능 개편안은 두 개의 미흡한 방안을 내놓고 학생·학부모들의 선택을 강요하다 결국 백지화하고 결정을 1년 뒤로 미뤘다. ‘죽음의 트라이앵글’ 논란과 정부 입시안에 반대하는 고교생들의 시위가 있었던 2005년 상황과 비슷하다.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 전환 등을 놓고 양분된 교직 사회는 노무현 정부 첫해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시행을 두고 전교조와 교총이 반목하던 것과 닮은꼴이다. 교육 당국의 무능과 무사안일이 부른 ‘교원 임용 절벽’ 사태는 여전히 답이 없고, 사립유치원 집단 휴업은 막판에 가까스로 멈췄지만 언제라도 터질 수 있는 교육계의 화약고가 됐다.

이런 상황인데도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김 부총리는 교육 사령탑으로 취임한 지 50일이 지났지만 아직 교육부 진용조차 꾸리지 못했다. 교육부 1급 5개 직위 중 3개가 공석 또는 직무대행이다. 김 부총리가 교육부 관료들에게 벌써부터 휘둘리고, 청와대와 소통이 안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김 부총리는 교육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에 기획관리실장 ㄱ씨를 참여시켰다. ㄱ씨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주도하지 않았더라도 간접적으로 지원하거나 암묵적으로 동의한 인물이다. 조사를 받아야 할 사람이 조사 주체로 임명된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교육부에서 1급 실장과 청와대 비서관으로 승승장구하다 퇴직한 ㄴ씨가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한 연줄을 이용해 현 정부에서 중책을 맡을 것이라는 소문도 있다. 김 부총리는 취임사에서 “불평등하고 서열화된 교육시스템을 바꾸고, 민주주의의 신념과 공존의 가치를 내면화하는 교육 생태계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김 부총리가 참여정부의 전철을 답습하지 않고 교육 개혁을 이끌기 위해서는 교육 수장으로서 입지를 확고히 하는 것이 급선무다.

문재인 정부 교육분야 최고 의사 결정기관인 국가교육회의의 앞날도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국가교육회의는 교육혁신·인적자원개발·교육자치 등 교육의 거시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수능 개편안, 특목고·자사고 폐지 같은 미시적인 사안까지 모든 교육 현안을 다룬다. 국가교육회의에서 정책을 결정하면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을 통해 집행하는 구조다. 이런 국가교육회의의 사무처 역할을 하는 ‘국가교육회의기획단’의 단장으로 기자 출신 ㄷ씨가 사실상 내정됐다고 한다. 서울시교육청 공보담당관을 1년6개월 한 것이 교육 관련 경력의 전부인 ㄷ씨는 문 대통령의 부산 인맥으로, 정권 실세의 대학 동문이다.

당초 예상과 달리 문 대통령은 국가교육회의 의장을 맡지 않기로 했다. 대통령이 발을 빼고 ‘낙하산’에 의해 운영되는 문재인 정부 국가교육회의가 인사 난맥과 지도력 부재로 제풀에 쓰러진 노무현 정부 교육혁신위의 복사판이 될 가능성이 있다.

사람의 일이든 나라의 일이든 ‘결정적 시기’가 있다. 두뇌 발달은 태어나서 36개월까지가 결정적 시기이다. 이 기간에 부모나 사회로부터 격리되면 그 이후 아무리 노력해도 온전한 지능을 갖출 수 없다. 개혁의 결정적 시기는 정권 초반 6개월이다. 늦어도 내년 지방선거 전에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

시민들은 교육 양극화를 해소하고 한국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명령하고 있다. 문 대통령과 김 부총리를 비롯해 조희연 서울교육감과 이재정 경기교육감 등 교육 관련 주요 정책 결정권자들도 모두 개혁 성향의 인사들이다. 광장의 촛불이 ‘드림팀’을 만들어준 것이다. 두 번 다시 오기 어려운 교육 개혁의 호기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교육 개혁은 영영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오창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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