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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시인은 2004년 세상을 뜬 농부철학자 전우익 선생을 “깊은 산속의 약초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20년 지기에 대한 과도한 상찬(賞讚)이 아니다. 전 선생의 삶 자체가 그랬다. 그는 일제강점기인 1925년 경북 봉화군에서 났다. 예나 지금이나 봉화군은 산골 오지다. 하지만 대지주의 아들이었던 그는 어린 시절 가난과 거리가 멀었다. 10대 때 서울로 올라와 경성제국대학에 들어간 그는 좌익계열의 ‘민주청년동맹’에서 활동했다. 사회안전법 위반 혐의로 검거돼 6년간 옥고를 치른 뒤 귀향했지만 보호관찰대상자로 1988년까지 주거제한을 받았다.

전 선생은 봉화군 구천리에서 작은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해가 뜨면 밭을 매고 나무를 심었다. 어둠이 깔리면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그렇다고 세상사를 외면하지 않았다. 그의 집을 드나들었던 운동권 학생과 문인, 종교인들과 밤늦도록 토론했다.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에 연루됐던 문부식과 김현장이 몸을 숨겼던 곳도, 평생의 절친이던 <몽실언니>의 권정생 작가와 우리말 지킴이 이오덕 선생이 즐겨 찾던 곳도 그의 집이었다.

전 선생은 1993년 신경림 시인의 권유로 펴낸 산문집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가 100만부 넘게 팔리면서 유명해졌다. 하지만 “지위나 권세, 명예가 오를수록 존재 자체는 형편없이 된다”며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다. 책 인세는 대부분 사랑의재단에 기부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달 22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5차 청문회에서 의원 질의 중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강윤중 기자

주위사람들에게 “우익이란 이름과 달리 좌익이 마음에 든다”고 농을 치기도 했던 그는 혼자만 잘사는 삶을 경계했다. 가을이면 추수한 콩과 율무, 팥 등을 스님과 신부, 출소한 장기수, 해직교사, 문인 등에게 나눠주려 해남으로, 광주로, 서울로 향했다. 빨래는 세제 없이 물에만 헹궈 널었고, 밥상엔 찬을 한두 가지만 올렸다. 과일은 껍질째 먹었고, 헌 신발은 슬리퍼로 고쳐 신었다. 그는 “덜 먹고, 덜 입고, 덜 갖고, 덜 쓰고, 덜 노는 게 편하다”고 했다. 전 선생의 아호는 두 개였다. 무명씨를 뜻하는 ‘언눔’과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일꾼을 의미하는 ‘피정(皮丁)’이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도 봉화 출신이다. 전 선생과 동향이다. 고향만 같을 뿐 성정과 가치관, 삶의 방식은 전혀 다르다. 평생 낮은 삶을 지향했던 전 선생과 달리 우병우는 부와 권력의 정점을 향한 질주를 멈추지 않았다. 영주고 수석입학, 학력고사 전국 53등, 서울대 법학과 진학, 만 20살 때 사법시험 최연소 합격, 사법연수원 2등 졸업이란 이력이 말해주듯 단 한 번도 ‘뒷줄’에 서본 적이 없다.

서울 중앙지검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한 그는 직배영화사 뇌물수수사건, 대구유니버시아드 휘장비리사건,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매각사건 등을 처리하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권력의 중심부에 다가갈수록 ‘법 기술자’로 변모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대면조사한 뒤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아 검찰 내부에서조차 ‘냉혈한’이란 평가가 나왔다.

좌절과 실패를 모르던 그는 2013년 검사장 승진에서 두 번째 탈락하자 사표를 낸 뒤 검찰 내부통신망에 짧은 글을 올렸다. “23년간 검사로 살아오면서 다른 길을 걸어본 적도, 돌아본 적도 없다. 보람은 가슴에 품고 짐은 내려놓고자 한다.” 하지만 그는 보람 대신 야망을 품었다. 짐도 내려놓지 않았다. 2014년 민정비서관으로 청와대에 입성했고, 이듬해엔 400억원이 넘은 재산을 공개하며 40대 민정수석이 됐다. 절대 권력의 자리에 앉혀준 박근혜 대통령의 충직한 호위무사가 된 그는 사정기관에 ‘우병우 라인’을 심는 데 여념이 없었다. 가족회사 ‘정강’ 자금 유용, ‘코너링이 좋은’ 아들의 의경 보직 특혜, 처가와 넥슨의 강남역 인근 땅 거래 등 언론이 제기한 숱한 의혹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는 망국의 춤을 춘 대통령에게 간언하지 않았다. 비선 실세와 문고리 3인방의 국정농단에도 눈을 감았다. 청와대에서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데도 검사 시절 그리도 잘 쓰던 사정의 칼을 빼든 적이 없다. 나라를 망친 직무유기다. 국정조사 청문회에 나와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했던 그는 망국이 아닌 우국의 길을 걸었다고 자부할지도 모른다. 그런 그를 시민들은 ‘법꾸라지’ ‘국민밉상’ ‘리틀 김기춘’ 등으로 부른다. 전우익 선생이 펴낸 <혼자만 잘사면…>엔 이런 글이 있다.

“밭에서 잡초와 독초가 자라듯 세상이란 밭을 갈지 않고 비워두니 어중이떠중이, 깡패, 건달들이 꾀어들어 나라를 흥정하고, 백성을 볶아먹을 못된 짓을 저지르고 있다. 논밭 갈 듯 세상도 갈아야 한다.”

지금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논밭 갈 듯 세상을 바꾸려 하고 있다. 하지만 우병우는 시민들이 갈아엎는 밭에서 아직 뽑혀나가지 않고 있다. 잡초와 독초를 뽑아야 밭이 산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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