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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에서 문선이나 조판 직종이 사라진 것은 사반세기쯤 전이다. 전광석화 같은 솜씨로 깨알 같은 활자를 추려내 판을 채워가는 솜씨에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기자들의 원고는 그들의 손을 거쳐 신문으로 만들어져 독자에게 전달됐다. 납 냄새 벗 삼아 시절을 풍미했지만 효율을 내세운 전산화 앞에서는 도리가 없었다. 더러는 직종을 바꿨고, 더러는 그만뒀다. 지금은 역사상 가장 빨리 변화하는 시기로 분류된다. 실제 기술의 노동 소외 사례는 차고 넘친다. 자율주행차는 운전직을, 무인 슈퍼마켓은 계산원 자리를 위협한다. 기사도 로봇이 쓰는 세상이니 기자라는 직업도 언제 사라질지 모를 일이다. 

미국의 러스트벨트 노동자에게 일자리를 맨 앞에 둔 도널드 트럼프는 구세주였을 것이다. “엄마와 아이는 만성적 가난에 발목이 잡혀 있고, 녹슨 공장은 묘비처럼 나뒹굴고 있다”는 트럼프의 취임사는 절절하다. 미국 내 일자리를 만들라는 트럼프의 으름장에 포드나 도요타는 물론 애플, 아마존, 테슬라 그리고 중국의 알리바바까지 충성을 맹세했다. 반독점, 세금, 환경 등 현안 때문에 항거할 수도 없다. 물론 강압으로 만들어진 일자리가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이나 멕시코의 5~6배에 달하는 미국 노동자의 임금을 견딜 기업은 많지 않다. 저임금 노동력을 바탕으로 무관세로 들어오는 제품 덕에 미국 소비자들이 싼값으로 자동차나 생필품을 샀던 점을 감안하면 중산층이 부메랑을 맞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미국 노동자들이 트럼프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은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일 게다.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에 혜택을 주겠다는 트럼프의 발상은 기업부터 챙겨온 기존 문법과는 분명히 다르다.

아베 신조는 일자리 분야에서 운이 좋은 편이다. 실업률 3.1%, 취업내정률 80%대 후반, 유효구인배율 1.4배 등 일본의 고용수치는 더 이상 좋을 수 없을 정도다. 아베 취임 후 고용은 100만명 이상 늘었다. 아베노믹스 한편으로 역설적으로 저출산 덕이 컸다. 일본의 15세 이상 노동인구는 6000만명으로 5년 전에 비해 300만명이나 줄었다. 생산가능인구가 줄면서 일자리 경쟁률은 낮아진 셈이다. 오로지 고용만을 앞세운 탓에 질은 좋지 않다. 특히 베이비붐세대의 은퇴와 맞물려 비정규직이 크게 늘고 있다. 정규직 1명이 은퇴하면 그 자리를 2~3명의 파트타임 노동자들이 채운 꼴이다. 아베는 뒤늦게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급여 및 복지 간극 축소에 올인하고 있다. 노동자가 살아야 경제가 산다는 것을 안다는 얘기다. 반면 박근혜의 일자리 정책은 실패였다. 고용률 70% 로드맵은 온데간데없다. 실업률은 치솟고 있고, 특히 청년실업률은 사상 최고치다. 몇몇 대기업은 돈을 쌓아놓기만 할 뿐 투자에 인색했고, 정부의 안이한 판단으로 구조조정이 미뤄진 산업에서는 실직자가 쏟아져 나온다. 정부는 뒤늦게 부처마다 일자리 책임관을 두고, 상반기에 화력을 집중해 공무원을 앞당겨 뽑겠다고 밝혔다. 조삼모사식 정책에 공공기관의 효율성 문제는 생각할 겨를이 없다.  

대권주자들이 앞다퉈 ‘일자리 대통령’을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리겠다거나 기업이 잘되면 일자리는 따라온다는 정형화된 패턴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지지율 선두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근로시간 조정과 공무원 증원을 통해 131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일자리 부족 시대에 정부 역할만 강조할 뿐 재원에 대한 구체안이 없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규제 혁파, 중소기업 육성을 얘기한다. 하지만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하는 만큼 해외로 진출하고, 정 할 일 없으면 자원봉사라도 하라”(조선대 강연)는 발언으로 미뤄보면 진의는 의심스럽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기본소득 구상을 내놓았지만 재원에 대한 구체성이 없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혁신주도형 성장과 공정경제,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는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를 늘리면 일자리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은 제로잡 사회이다. 최근 출판된 <로봇의 부상>이라는 책에는 인력 절감기술이 미래 유망사업으로 분류돼 있을 정도다. 2025년에는 국내 전체 고용인구의 60%가 인공지능(AI)과 로봇에 의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자본은 선하지 않다. 기업은 노동을 최소화해야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확신에 차 있다. 이렇게 되면 양극화는 더 심해진다. 소득이 없는 다수는 생존을 위협받고, 20대의 빈곤은 40대가 되어도 풀 수 없는 족쇄가 될 것이다. 트럼프만큼은 아니더라도 기업에 ‘일자리를 만들라, 그게 기업의 할 일’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만 강조하고 기업의 선의에만 매달릴 상황이 아니다.

박용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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