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지난 5월 만난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경제학부 교수에게 “한국이 최저임금을 2020년까지 1만원 수준으로 올릴 계획인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했다. 그는 2015년 소비와 빈곤, 복지에 대한 연구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최저임금이 늘어나는 데 찬성한다. 그러나 최저임금이 오를 때 고려해야 할 것은, 어떤 이는 일자리를 잃고, 어떤 이는 소득이 는다는 것, 즉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동시에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정을 내리기 전에 전체적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경험적으로 조사를 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은 뜨거운 감자와 같다.

시장경제체제에서 임금은 노동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다. 일자리를 찾겠다고 하는 사람이 많으면 임금은 하락하고, 적으면 올라간다. 그런데 대체로 비전문직 노동시장은 구직이 많다. 따라서 임금은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할 수 없이 낮은 수준에서 결정된다. 이에 정부가 개입해 최저임금을 올려 근로자들이 생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장에서 결정된 임금이 효율성에 근거한 것이라면, 최저임금은 사회정의에 부합하는 것이다. 최저임금은 빈곤을 줄이고 소득 불평등 완화에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게 아니다. 최저임금 인상은 인력 감축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오히려 실업자들을 더 양산할 수 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 세번째)이 1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및 저소득층 지원대책'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1992년 미국 뉴저지에서 시간당 최저임금을 4.25달러에서 5.05달러로 18.8% 인상한 뒤 고용에 변화가 있는지 연구한 적이 있다. 식당 매니저들에게 최저임금을 올린 뒤 종업원을 줄였는가를 물어 통계를 냈다. 이를 근거로 경제학자인 데이비드 카드와 앨런 크루거는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가 없진 않지만 고용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미미하다고 결론냈다. 하지만 1996년 직원고용명부를 토대로 같은 연구를 한 데이비드 뉴마크는 종업원이 줄었다고 결론냈다. 최저임금과 고용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10.9% 오른 8350원으로 결정했다. 지난해에는 6470원에서 16.4% 올린 바 있다. 2년간 인상률은 29%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되자 자영업자를 비롯한 소상공인들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최저임금은 손쉽게 다룰 사안이 아니다. 특히 한국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영향을 받는 자영업자들이 유독 많다.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준비 없는 상태에서 감내할 수준 이상으로 오른다면 얘기가 다르다. 이 지점에서 정부는 몇 가지를 빠뜨렸다. 우선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역효과를 진지하게 고민했는가이다. 정부는 최저임금을 올리면 서민들의 지갑이 빵빵해져서 소비가 늘고, 투자로 이어져 일자리가 늘어나는 선순환만을 생각한 것 같다. 그런데 막상 최저임금이 오르자 소상공인들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인력 감축에 나섰다. 디턴 교수의 지적대로 ‘어떤 이는 소득이 늘지만, 어떤 이는 일자리를 잃는’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올 들어 고용 증가는 참담한 수준이다. 연간 30만명에 이르렀던 고용 증가는 올 상반기 10만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보완대책도 소홀했다. 정부와 여당은 뒤늦게 영세자영업자를 위한 각종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일자리안정자금 연장, 근로장려세제 확대, 가맹본부와 원청업체의 갑질 근절과 함께 상가임대차보호와 카드수수료율 인하와 관련된 법안도 추진하고 있다. 이 같은 대책들을 먼저 만들고 소상공인들에게 동참을 호소했다면 사태가 이 지경까지 왔을까 의구심이 든다.

혼란의 핵심은 영세사업자들이 너무 많다는 구조적인 문제에 있다. 한국에서 자영업자 등 비임금 근로자는 683만명으로 전체 근로자의 25%를 차지한다. 주요 선진국(12%)의 두 배 수준이다. 그렇다고 줄어들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구직활동을 하다가 여의치 않자 창업에 나선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 위한 해결책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염두에 둘 것은 기존 산업에서 일자리가 생기기를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라는 사실이다. 청년 일자리든, 노년층 일자리든 일자리는 대부분 새로운 산업이나 비즈니스에서 나온다. 기존의 산업은 자동화, 효율화를 통해 일자리를 줄일 뿐이다. 미래의 먹거리가 될 산업이나 비즈니스를 찾고 이를 지원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이를 통해 영세자영업자를 줄여야 한다. 이와 함께 사회안전망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직장을 잃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회는 소자본으로 무리한 창업에 뛰어들게 만든다. 최저임금 사태를 보면 정부는 단기간에 모든 것을 완수하겠다는 조급증에 빠져 있는 것 같다. 당장이 아닌 미래를 위한 대책이 무엇인가 고민해야 한다.

<박종성 논설위원>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