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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경제학의 창시자인 애덤 스미스는 경제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발견해 냈다. 다수의 수요자와 다수의 공급자가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려 경쟁하는 사이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지는 지점에서 가격이 결정되고 자원배분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시장경제의 기본 법칙이다. 한국 경제에는 이런 수요·공급의 법칙보다 더 강력한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 바로 정치다. 정치란 세상사 어떤 일도 관여하지 않는 것이 없고, 정치가 경제에 참견하는 것이 한국만의 현상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그 정도가 너무 심해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

한국 경제의 각종 지표가 악화되고 있다. 취업자 증가폭이 급격히 축소됐고, 소득격차는 확대된 걸로 나온다. 투자나 소비, 생산 지표 모두 위축돼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도 낮췄다. 그런데 지표들에 대한 해석은 정치적 입장에 따라 다르다. 보수야당과 보수언론은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 근무제 등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으로 일자리가 사라졌고, 소득양극화가 벌어지며 성장이 안된다고 한다. 반면 정부는 고용지표 악화는 조선과 자동차산업 등의 구조조정과 경기불황 등 구조적 요인에 기인한 부분이 더 크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영업자 등의 소득은 줄었으나 임금근로자의 소득이 크게 늘어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가 나고 있다고 한다. 대책은 진단보다 훨씬 더 극단적으로 갈린다. 보수야당·언론은 소득주도성장을 당장 때려치우라 하고,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더 가속화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다고 한다.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연수원에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회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포문을 먼저 연 것은 보수 쪽이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으로 수세에 몰린 이후 남북관계 개선으로 설 자리마저 위태위태하던 차에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경제지표 악화가 출현했다. 최저임금과 고용의 관계는 경제학계에서 오랜 논쟁거리지만 어느 한쪽으로 일방적 결론이 내려지진 않은 상태다. 그래도 경제지표만 나쁘게 나오면 최저임금 인상과 연결지으며 정부 비난에 열을 올린다.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영향을 줬을 개연성도 있다. 그러나 과연 얼마나 어떻게 영향을 줬는지 실증적으로 확인된 건 없다. 고용이 악화됐으니 소득분배가 나빠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무직 노령층이 대거 편입되는 등 소득조사 대상 표본집단이 크게 바뀌어 과거와 액면 수치만 놓고 비교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통계청의 주의 요청은 무시한다. 원하는 답이 나왔으니 과정은 상관하지 않는다. 경제의 기본인 과학적 분석은 없고, 정파적 이익에 따른 정치적 공세만 있다.

그 과정에서 고통받는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숨통을 틔워주자는 취지의 최저임금은 졸지에 ‘마녀’가 됐다. 보수야당·언론이 정치·사회 문제 등에서 오랫동안 써왔던 ‘낙인찍기’ 프레임 전략이 연상된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기업 위주의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이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돼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대안은 얘기하지 않는다. 그저 정부를 공격할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태도다. 이를 통해 문재인 정부를 약화시키고 권력을 되찾겠다는 것이다. 2020년 총선 때까지 최저임금과 소득주도성장을 공격하는 보수의 프레임은 확대재생산될 것이다.

보수 측이 경제정책을 조롱하며 항복하라는 식으로 나오니 정부도 맞대응을 한다. 양극화를 확대하는 기존의 불평등·불공정하고 불안정한 한국 경제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명제다. 이를 위해 정부가 추진하는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공정경제는 서로 조화를 이뤘을 때 훌륭한 성과를 낼 수 있는 조합이다. 저소득층의 소득을 높여 이들의 소비가 늘어나면서 생산과 고용이 함께 증가하는 성장의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 전통산업, 대기업 위주의 성장이 한계에 도달한 지 오래인 상황에서 제대로 된 성장은 4차 산업혁명에 맞는 혁신적 신산업에서 찾아야 한다. 이를 공정경제가 뒷받침해 성장의 과실이 골고루 퍼지게 한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 이후 현실 경제가 경제 이론에 맞춰 완벽하게 돌아간 사례는 거의 없다. 특히 이들 정책의 조합은 지금까지 한국에선 제대로 시도해본 적이 없는 미지의 길이다. 시행착오가 없을 수 없다. 현재 드러나는 경제지표의 악화가 시행착오의 일부일 수도 있다. 시행착오가 있다면 솔직히 인정하고 원인과 치유책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시행착오를 쉽게 인정하지 못한다. 약점을 내보이고, 더욱더 수세로 몰릴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 같다.

극단적 정치 공방은 한국 경제의 난국을 돌파할 해법을 찾아낼 합리적인 토론과 협의의 장을 막아 버린다. 한쪽은 비난만 하고, 다른 한쪽은 우리 갈 길만 가겠다고 하는 사이 한국 경제의 속병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김준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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