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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왔다. 아이와 부모의 행복에 대한 의견 차이가 집안 싸움이 된 가족이 또 왔다. 최근 이런 유의 상담이 꽤 비중을 차지한다. 아이는 ‘행복하게 살고 싶으니까 자신을 그냥 내버려둬달라’고 하고, 부모는 ‘그것은 행복이 아니라 너의 무기력일 뿐이고, 결국 삶을 포기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서로 행복이 찾아오는 길은 그 길이 아니라고 한다. 아이는 작은 가게로부터 행복이 온다고 하고 부모는 대기업이 행복을 키워준다고 한다. 아이는 래퍼로 데뷔하는 것이 행복이라 하고 부모는 취미 이상일 수 없다고 한다. 젊은 아들은 버스킹으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 행복이라 떠난다고 하는데, 부모는 그런 만행을 저지르기 전에 뼈빠지게 일해서 집부터 사놓는 것이 할 일이라고 한다.
아이는 문신을 해서 멋진 몸을 만들면 행복해질 것 같다는데, 부모는 ‘드디어 범죄조직으로까지 진출하는구나’라고 한다. 아이는 대학을 가지 않고 차라리 그 돈으로 자신의 작은 식당을 열고 싶어한다. 이른바 심야식당을 열어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하는데, 부모들은 TV에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과 현실은 다르다고 말한다. 차라리 그 열정으로 공부해서 어디라도 대학을 나오라고 한다. 젊은이가 ‘내가 행복하면 그만이지, 나의 행복에 부모가 너무 끼어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자, 부모들이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냐’며 밉다고 역정을 낸다. 그러면서 ‘도대체 요즘 아이들은 자신이 행복하게 살 준비를 하는 것일까? 이런 삶의 자세로 아이들이 행복에 도달할 수 있을까?’ 온통 걱정이라고 한다. 젊은이들은 세대도 달라지고, 시대도 변하여 우리의 행복은 부모들의 행복과 달라졌다고 말한다. 좋아하지도 않는 밥 사주면서, 마치 지금처럼 살면 굶어죽을 것처럼 말하는 부모는 단지 꼰대일 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부모세대들 중 일부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했다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은 단지 순간의 기분일 뿐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얼마전 언론에서 전한 ‘사토리(득도)’는 진정한 깨우침이 아니라 욕망하지 않기, 무책임하게 살기에 다를 바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고 한다. 멀리 덴마크에서 왔다는 ‘휘게’, 스웨덴의 ‘라곰’, 프랑스의 ‘오캄’ 등 작은 행복은 아이들이 생각하는 그 방식으로 가볍게 찾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행복은 하드워크이고 고생 끝에 찾아오고, 고진감래의 맛으로 인생은 살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상담 장면에서 행복의 방향을 놓고 다투는 부모와 젊은이들은 조금 낫다. 아예 이번 생에 태어난 것 자체가 문제라는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 그룹의 친구들은 행복에 대해 묻지도 않고 행복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헬조선, 흙수저의 이생망 그룹에게 다음 생에는 어떻게 태어나기를 바라는지 물었더니, 거의 모든 아이들이 다음 생에는, 돌이나 나무 혹은 무생물로 태어나기를 바란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부모, 기대, 행복… 이런 단어가 없기를 바란다고 한다. 행복은 평화로운 죽음이라고나 할까, 큰 고통 없이 죽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생각보다 빨리 죽는 것이 더 행복할 것 같다는데 이유는 살면 살수록 고통만 커지고 해야 할 고생의 숫자만 느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증거가 바로 부모들의 삶이라고 한다. 살아갈수록 행복하다고 하는 어른들보다는 ‘헛살았다, 괜히 살았다, 헛고생했다’는 어른들을 더 많이 만났다고 한다. 젊은이들은 한국에서 자살을 많이 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고 한다. 불행하기 때문이고 행복할 가능성도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의 마음은 부모의 식민지이고, 부모의 마음은 옆집의 식민지, 친족들의 식민지라고 한다.
무라카미 류라는 소설가가 자신의 조국인 일본에 대하여 다 있는데, 희망만 없는 나라라고 했듯이 지금의 젊은이들은 우리나라에 대하여 전보다 많이 나아졌지만, 여기는 행복이 없는 나라라고 한다. 기대, 갑질, 태움, 무시, 혐오, 차별 등으로 인하여 행복으로부터 멀어진 사회. 의무와 부담만 가득한 불행한 나라가 바로 이 나라라고 한다.
그래서 제안한다. 문재인 정부에. 지금 우리는 새롭고 다양한 행복에 대해 논하기 시작해야 한다. 국민행복회의를 열고 국민행복의 다양한 모델을 함께 제시했으면 한다.
<김현수 |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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