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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알고 보니 서울 지하철 2호선 사당역에서 내려 그곳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였다. 가장 쉽게 찾아가려면 8차선 찻길을 끼고 가다가 샛길로 빠지는 길목에 세워둔 표지판의 화살표를 따라 걸으면 되었다. 그 길에는 이런저런 가게가 늘어서 있었고, 때때로 장이 섰다. 할머니들이 직접 키우고 캐왔다는 채소나 나물 따위를 들고 나와 시끌벅적했다. 그 길 끄트머리에 보육원이 있었다. 보육원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었고, 아이들은 수시로 들락거렸다. 꽤 자유로워 보였지만, 그곳에는 나름대로 엄격한 규율이 있었다. 아이들을 돌보는 이모들보다 언니와 형들이 동생들을 무섭게 다그쳤다. 특히 남자아이들 방에서는 서열이 확실하다고 했다.

그래도 그 아이는 한 살 많은 형들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 도리어 형들이 버릇없이 까부는가 싶으면 가만있으라고 했다. 같이 가게에 가면 형들이 군것질거리를 너무 많이 고른다고 타박하기도 했다. 아이는 내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는 가게에 갈 적마다 흰 우유 하나만 집어 들었다. 더 고르라고 해도 말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이는 과묵했다. 하지만 사당역에서 보육원으로 오는 지름길을 알려준 건 그 아이였다. 아이는 다세대주택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뒷골목이 큰길보다 훨씬 빠르다고 했다. 그날 아이는 비탈진 좁은 골목길을 앞서 걸으며 길잡이를 해줬다. 뒤따라오는 형들이 떠들며 장난을 치면 아이는 얼굴을 찌푸렸다.

나는 보육원에 가지 않게 된 뒤로도 간혹 아이를 밖에서 만나곤 했다. 여전히 아이는 형들보다 의젓한 데다 공부도 꽤 잘하고 있었다. 말썽을 부리던 형들도 잘 자라고 있으니, 아이는 걱정할 게 없어 보였다. 아이는 수월하게 4년제 대학에 들어갔고, 그 핑계로 오랜만에 만나 같이 밥을 먹었다. 그날도 아이는 가장 싼 음식을 주문했더랬다.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아이가 휴학한 뒤로 형들도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껏 그 아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제 그 아이도 서른네 살이 되었다. 그가 찾은 길이, 걷는 길이 행복한 길이길…. 민기야, 정말 보고 싶구나.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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