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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 대한 사랑, 즉 효는 도덕적 현상으로 이해되는 데 반해,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본능으로 여겨진다. 인간이 만 3세까지는 부모의 절대적 사랑에 의존하기 때문에, 공자는 그에 대한 도덕적 답례로 부모 삼년상을 주장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효는 부모의 본능적 헌신에 대한 도덕적 답례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이후 생물학에서는 종의 번식이 생명활동의 목적이라고 설명해왔다. 이런 설명에 따르면 부모의 자식사랑은 모든 생명체의 본능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러한 자식사랑의 본능을 의심케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아버지가 아들을 살해하고 토막 내 냉동고에 보관한 엽기적인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과거에도 부모가 자신의 자녀를 살해한 사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극심한 생활고에 아이들을 먼저 죽이고 자살하려는 부모들이 있었고, 어린 미혼모나 미혼부가 갓난아기를 유기하거나 죽이는 경우가 있었다. 또는 출산 후 우울증으로 아이를 죽인 엄마도 있었다. 이런 경우는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없다는 절망감으로 인해 아이를 죽이는 것이 오히려 아이를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여겨서 일어난 일이거나, 아니면 병증이 불러온 비극이었다.
이번 경우와 가장 비슷한 사례로 몇년 전 서래마을에서 있었던 프랑스인 엄마의 자녀살해사건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는 범죄자가 외국인이어서 우리 사회에 주는 충격이 이번만큼 직접적이지 않았다. 자식사랑의 본능을 의심하게 하는 또 다른 사건들은 예컨대 술을 마시거나 게임중독에 빠져서 자녀에게 폭행을 가하는 아버지들이나, 친딸을 성폭행하는 아버지, 그리고 그런 폭력을 곁에서 묵인하는 어머니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것들이다. 이런 경우에도 대부분은 생활고 또는 자식사랑보다 더 강하다는 성욕본능이나 술, 중독 등과 같은 소위 ‘불가항력’ 때문인 것으로 설명되어, 부모의 자식사랑이라는 숭고한 본능에 대한 믿음을 뿌리부터 흔들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정말로 ‘비정상적’이어서, 사건조사를 위해 범죄심리분석관이 투입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비정상적’이라는 표현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이번 사건은 정말로 ‘심리적인’ 현상인가? 과거에 존속살인이나 존속학대 사건이 발생하면 사회적으로 도덕적 울분이 끓어올랐다. 효는 본능이 아니라 도리라는 믿음이 확고했기 때문에, 도리에 대한 위반은 도덕적 분노를 불러 마땅하다고 여겨졌다. 또한 앞서 열거한 자녀에 대한 부모의 학대나 살해와 같은 여타 사건들의 경우에도, 사회 한쪽에서 도덕적 분노가 표출되더라도 대개의 경우 그것은 ‘불가항력’에 의한 것으로 무마되곤 했다.
아동학대 신고의무자 신고율_경향DB
그런데 이제 정말로 어떤 언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비정상’이라고 표현한 것 같다. 그렇다면 이것은 심리적으로 비정상적인 어떤 개인에게서만 특수하게 나타날 수 있는 개별적인 사건인가? 아니면 우리는 과거에 자식을 폭행하거나 살해한 사건들을 이번 사건과의 연결성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인가? 만일 첫째, 부모의 자식사랑이 본능이라면 둘째, 자식을 학대하고 살해하는 경향이 이미 예전부터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해 이제 우리의 규범적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렀다면, 우리는 자식사랑이라는 생물체의 본능을 위협하는 ‘사회적 힘’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비정상’ 상태를 설명하는 심리학적 관점뿐만 아니라, ‘정상’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사회학적 질문도 제기해야 한다. 또 우리 머릿속의 ‘정상’이 사회적 현실로서의 ‘정상’과 일치하는지도 물어야 한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부모의 ‘정상적인’ 자식사랑이란 어떤 형태를 띠고 있는가? OECD 최고의 청소년 자살률과 아시아 최저 수준의 청소년 행복감, 두 자릿수를 향해 달려가는 청년실업률, 하늘 높을 줄 모르는 사교육 비용과 심화되는 부모에 대한 의존성 등이 현재 우리가 ‘정상적’으로 체험하는 자식사랑의 형태이다. 아마도 ‘정상적’인 많은 부모들이 이미 그들의 자식사랑이 ‘사회적 힘’들 때문에 위협받고 있음을 절감하고 있을 터이다.
홍찬숙 | 서울대 여성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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