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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씨는 일찍이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중앙의 특정 부처에서 청춘의 대부분을 사무관으로 보냈다. 장년의 초입에서 서기관이 되었고, 이제 과장으로 일한 지도 수년이 지났다. 퇴근과 주말을 포기한 고단한 삶을 알아주는 이가 없어도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K과장이 소속된 부처가 국토교통부이건, 농림축산식품부이건, 보건복지부이건, 그가 담당하는 업무가 우리 삶의 질을 직접적으로 좌우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순 없다. 주택을 어떻게 건설하고, 의약품을 어떻게 규제하며, 농산물을 어떻게 유통시킬 것인지에 대한 큰 그림은 ‘위’에서 결정되겠지만, 그것이 집행되는 디테일은 결국 K과장의 소관이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자신이 맡은 일과 임무에 대해 K과장이 가지고 있는 전문성과 자부심의 크기만큼이나 그 재량권은 더욱 커질 것이다. 장관은 어차피 곧 바뀔 것이며, 국정감사는 며칠만 버티면 되는 무딘 칼이고, 해당 업무를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꿰뚫어보고 있는 사람은 정작 K과장 자신이기 때문이다.

우연찮게도 K과장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국정감사이다. 그 기간이 되면 해당 업무를 잘 알지도 못하는 국회의원, 사실은 그 보좌관들이 요구하는 수백페이지의 자료를 만들어 제출하고, 국회에 출근하다시피하여 며칠씩이나 대기해야 하며, 정작 본업은 마비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K과장이 국정감사를 정말 싫어하는 이유는 자신의 업무를 이해하거나 통찰할 능력도 시간도 없는 이들이 뜬금없이 카메라 앞에서 호통만 치는 것을 하릴없이 지켜보아야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일찍이 과거로 선발되었던 조선시대의 관료들이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지침을 가슴에 새겼던 것처럼, 국가주도, 관료주도의 근대화 경로를 밟아온 우리 현대사에서 겹쳐 보이는 것은 근대적 합리성과 효율성으로 무장한 전문적이고 공평무사한 관료들에 대한 국민들의 전적인 믿음이었다. 한국을 ‘과대성장국가’라고 부를 수 있는 것는 이런 국가와 관료가 시민, 사회단체, 정당을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능한 국회가, 그리고 당파적인 정치가 해야 할 일은 관료가 자기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비켜주는 것이며, 좋은 장관이란 이런 사정을 잘 이해하고 ‘외풍’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많은 이들이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나는 이곳에 한국정치의, 혹은 현대국가 일반의 문제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대의로 선출된 권력이 정부를 구성하고, 관료제라는 주인 없는 중장비의 운전석에 앉아 나랏일의 목적과 방향을 설정하며, 주어진 임기 동안 그 중장비를 운용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중장비는 운전하기 어렵고, 이전 운전자가 고정해 놓은 설정들이 남아 있을 것이며, 때로는 기계가 제맘대로 움직이기도 할 것이다.

민주화 이후 한국의 모든 정권들은 공통적으로 관료를 운용하고 통제하는 데 실패하였다. 실패하였기 때문에 정부 부처에서 청와대로 퇴각하여 비서실에 수석들의 이름으로 실질적인 내각을 구성하고 친정체제를 구축하였다. 국정농단과 권력의 사유화가 가능했던 것은 이런 청와대 친정체제 자체가 기형적인 비공식적 권력의 운용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검찰이라는 관료기구를 박근혜 정부가 포섭한 방식은 원칙과 정책에 의한 공적 운용이 아니라 검찰 내 사적 관계를 통한 직접적인 지배였다. 외교관 출신이 아닌 외교부 장관과 검찰 출신이 아닌 법무부 장관 후보를 내세운 의미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지난 두어 달을 지루하게 이어온 장관 임명을 둘러싼 여야의 공방은 사실 대통령 정부구성권과 국회 견제권의 대립을 그 형식으로 하고, 여당이 구성하는 정부에 대한 야당의 반대를 실질적 내용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논의에서 정작 빠진 것은 선출된 권력인 대통령권과 의회권이 국가기구와 관료제를 어떻게 통제하고 운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였다.

그것이 손쉬운 답이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때로는 우리가 K과장의 능력과 선의와 사명감을 믿고 모든 것을 맡겨야 할 순간도 있을 것이다. 또한 때로는 우리가 선출한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장관을 통하여, 때로는 우리가 선출한 국회를 통해서 그가 그토록 성가셔 하는 설명과 설득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확실한 사실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공무원들의 능력과 선의와 사명감을 믿어 의심치 않더라도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이들의 선의와 사명감에 전적으로 맡길 수는 없다는 점. 둘째, 선의와 사명감의 총합이 반드시 좋은 정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 셋째, 결국 시민들에게 최종적인 책임을 지는 것은 K과장이나 관료제가 아니라 선출된 권력이라는 점. 넷째, 그럼에도 K과장의 노고를 잊지 말 것.

박원호 | 서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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