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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혁명 1주년, 이제 고름덩어리를 치워냈을 뿐, 뿌리는 아직 그대로다. 뿌리를 뽑아내야 한다. 망국의 뿌리. 단지 입장이 다른 정치가 아니라 악의 정치를 펼치던 이전 정권들의 야만은 낱낱이 국민들에게 알려져야 한다. 돌이켜 두 정권을 생각해볼 때, 박근혜 정권이 곪아터진 고름덩어리였다면 이명박 정권은 화근, 즉 세균의 균주였다.

국가를 부패시킨 이명박 세균정권의 첫 번째 만행은 최근 밝혀진 국가정보원 사유화와 국정원의 민간사찰, 그리고 국정원 댓글부대의 대선 부정공작의 악행들이다. 2014년, 어느 날이었다. 나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로서 정부 부처로부터 실무위원을 맡아달라고 부탁받았다. 그런데 그 위원으로 추천되는 과정에서 국정원 직원이라는 작자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나에게 ‘국가관’이 무엇이냐는 질문, ‘국가관’을 적어내라는 명령조의 발언을 해서 충격을 받게 했다. 얼마 뒤 다음 통화에서는 ‘노란색’ 근처에 다니지 말라고 하기도 했다. 불쾌한 정도가 아니라 흉통과 함께 오심과 구토가 올라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5일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승용차를 타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그런 치욕적인 대접을 받은 국민이 한둘이 아니다. 지금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을 포함한 수만의 국민들이 개인사찰 증명 요구와 더불어 국정원 개혁에 대한 “내놓아라, 내 파일” 시민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시민들을 염탐하고, 인터넷 게시판에 돈으로 도배한 더러운 댓글들로 국민의 정신을 감염시켰다. 결국 이명박은 불신이라는 씨앗을 사회 곳곳에 뿌렸다.

두 번째 이명박 정권의 악행은 일제고사의 부활이다. 협동과 상생을 가르쳐도 부족한 교육판에 일제고사라는 개인 간, 학교 간 경쟁을 만들어서 아이들, 학교들을 줄세우고 수치심을 안겼다. 이명박 정권은 미래를 오염시키고, 아이들에게 학력신분제를 이식했다. 그때의 이명박 정권이 국민들에게 선물한 삶의 방식이 바로 각자도생이다. 각자도생은 공멸의 구호이다. 나 하나만 살아남는 것은 곧 죽음이다. 죽음으로 가는 배에 올라탔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명박 정권 시절인 2010년 우리나라 자살률은 30.7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그리고 이 각자도생의 결과로 아이들은 무기력이라는 중병과 공부고문으로 인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인생을 이미 망했다고 선언하고 자괴감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 절대 사랑의 종교를 가진 장로 대통령이 저지른 국가와 아이들에 대한 악행은 불신에 이어 분열을 낳았다.

그래서 세 번째 이명박의 악행은 바로 종교를 등에 업고, 종교가 얼마나 허망한가를 한없이 보여준 것에 있다. 종교는 신비이고 고통에 대한 구원의 보루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지독한 세속화라는 표현이 민망할 정도로 이명박의 종교는 편가르기, 이분화, 우익화의 길로 나아가 일부 세력을 분별없는 패거리로 만들었다. 그 거래가 성사되게 하기 위해 이명박은 뻑하면 도시를 종교에 바치고, 국민도 바쳤었다. 그의 종교에 성스러운 것은 없었다. 단지 비즈니스만 있을 뿐이었다. 이명박 정권은 종교마저도 세속화하고 희화화하여 몰락의 길을 걷도록 했다. 그에게 정치는 비즈니스였다. 그는 사기업의 CEO처럼 국가행정도 장사, 국토도 장사, 외교도 장사로 했고, 반짝 홍보하고 뒷감당은 하지 않았다. 5년간 취한 개인적 이득과 국가 대통령이라는 스펙을 추가하는 것으로 자기애를 충족했다. 그에게 수치심이란 없었다. 토건회사에 갖다 바쳐, 파괴된 생태계의 ‘녹조라떼’는 보이지 않는다. 그가 보는 것은 이 공사에서 이득을 보게 해준 건설회사의 사장 얼굴들이다.

촛불이 태워야 할 것은 이런 전 정권들의 온갖 균주들이다. 이제 고름덩어리를 조금 치워냈을 뿐이다. 국가와 국민에 온갖 염증과 부작용, 부패를 일으켜왔던 기생충 관료들과 곰팡이 학자들, 썩은 언론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촛불 1주년, 아직 우리는 민주주의를 통해 치유하는 국가적 과정의 입구에 서있을 뿐이다. 다시 100만이 모이고, 1000만이 모여서 얽히고설켜온 우리의 상처들을 찬찬히 제거하고 뜯어내고 분리하고 보존할 것들을 나누어야 한다. 촛불은 다시 타올라야 한다.

<김현수 |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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