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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저들은 부끄러움을 모른다. 본인들이 누렸던 사회적 지위에 따른 책임을 지겠다는 생각은 없다. 재임 시절 권력기관이 자행했던 낯 뜨거운 사건들이 속속 드러나도, 정치보복이라고 잡아떼면 그만이다. 그래도 전직 대통령인데, 이 정도면 알아서 덮는 것이 예의 아니냐면서 ‘퉁치려’ 한다. “이제 많이 묵었으면 그만하는 게 맞다”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의 발언은 두 사람 마음속을 들여다본 후 나온 것일 터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5일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승용차를 타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저들의 행태는 과거 언사들과 정확히 정반대다. “어떤 이유에서든 법치를 무력화하려는 행동은 더 이상 용인하지 않을 것” “정치, 사회, 법질서, 도덕수준 등에서 국격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도록”이라고 강조했던 자는 뒤에서 권력기관을 사유화하고, 국격을 추락시켰다. “과거로부터 겹겹이 쌓여온 잘못된 적폐를 바로잡지 못하고 이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너무도 한스럽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강조했던 이는 적폐의 온상으로 지목됐으며, 지금도 비정상적 대응으로 일관한다. 이율배반적 언행을 서슴지 않는 이 사람들의 머릿속이 궁금해졌다.

#이명박의 흥정. 이명박은 이 순간에도 주판알을 퉁기고 있다. 사과나 해명은 돈이 되지 않는다는 계산이 장사꾼인 그의 머릿속에 서 있다. 백 번을 양보해 “(직접 관여는) 상식에 맞지 않는다”는 변명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는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국가정보원과 군 사이버사령부 등의 전방위적 국정농단을 막지 못했다는 잘못을 통감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런데도 이명박은 “정치보복” “감정풀이” “퇴행적 시도”라며 논점을 흐린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를 하겠다는 생각 따위는 없다.

이명박은 죄를 덮거나, 죄의 대가를 최대한 경감받기 위한 흥정을 시도하고 있다. 바레인 출국 때 정치보복 운운했던 그가 3일 만의 귀국길에 침묵하고 여태껏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전형적인 치고 빠지기다. “노무현 정부에 대해 쌓아놓은 자료가 있다”는 측근들의 주장은 ‘우리도 깔 것이 있으니 이쯤해서 그만두자’는 노골적인 협상시도다. 죄를 사해준다는 약속을 받는다면 그는 그제야 유감표명이나마 할지도 모른다. 그에겐 ‘호형호제’ 한다는 홍준표 대표도 흥정 대상이다. ‘탈당했던 친이계들을 돌려보내 동생 세력을 불려줄 테니, 당 차원에서 형을 보호해줘.’

#박근혜의 투정. 그는 대통령직에서 파면당하고, 감옥에 갇혀서도 ‘나는 죄가 없다’고 투정을 부린다. 한 달 넘게 재판을 거부하는 것도 그 연장선상이다. 그와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례들이 속속 확인되고, 문고리 3인방이 그의 지시에 따라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받았다고 실토하는 등 등을 돌렸지만 그는 여전히 현실 밖에 있는 듯하다. 박근혜 청와대에 근무했던 고위 인사는 그의 재판거부에 대해 “법원 판결을 신뢰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고, 모든 것을 맘대로 하라는 식”이라고 했다. 특활비를 상납받은 것도 ‘나라를 위해서 썼다’는 모호한 자기최면으로 합리화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자폐적 심리상태는 어디서 비롯됐는가. 이명박의 장삿속과 비교하면, 분명 그의 심리는 분명 불가해한 측면이 있었다. 그의 한나라당(한국당 전신) 대표 시절 측근이었던 전여옥 전 의원의 최근 블로그 글을 읽고나서야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후보 때는 ‘나의 집, 청와대로 돌아가겠다’였다면 대통령이 된 뒤는 ‘내 집에 왔다’고 생각한 거죠. ‘내 집은 청와대, 이 나라 예산은 나의 돈’이라고 여긴 겁니다. 즉 이 나라와 이 나라 국민조차도 ‘나의 영지, 나의 백성’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박근혜는 자신을 권력을 지닌 군주 내지 공주로 여기고 ‘제대로 대접하라’고 투정하고 있다.

#진실의 방으로. 버티는 이들을 보면서 영화 <범죄도시>가 떠올랐다. 영화 속 주인공 형사는 “진실의 방으로”라는 말과 함께, 범행을 잡아떼는 피의자를 구석으로 몰고가 구타 등 극약처방 끝에 자백을 받아낸다. 국가적 범죄를 저지르고도 ‘정치보복’이라고 우겨대는 전직 대통령들에게 진짜 진실의 방이 필요하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특히 김관진이 구속적부심에서 풀려났으니, 시간을 벌었다고 안도하고 있을 이명박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다.

탄핵에 반대했던 이른바 ‘애국 시민들’이나,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와 국격훼손 따위를 운운했던 두 사람의 측근들은 이 말에 정색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최소한의 품격, 국민에 대한 도리 따위는 저버린 채 권력유지에 급급했던 둘의 시대를 견뎌내고, 꼬박꼬박 세금을 냈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 정도 말을 할 권리는 있다고 생각한다.

<이용욱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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