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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살 유가족이다. 그간 각별한 사이의 사람들에게만 이 사실을 이야기했었다. 자살한 가족은 우리 삼형제의 막내 동생이다. 2012년 늦가을 어느 날 경찰서에서 온 전화로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납골당에 안치하는 순간까지 한 편의 영화처럼 3일의 시간이 멈추지 않고 흘러갔다.

<!--imgtbl_start_1--><table border=0 cellspacing=2 cellpadding=2 align=RIGHT width=200><tr><td><!--imgsrc_start_1--><img src=http://img.khan.co.kr/news/2017/08/29/l_2017083001004052700318211.jpg width=200 hspace=1 vspace=1><!--imgsrc_end_1--></td></tr><tr><td><font style=font-size:9pt;line-height:130% color=616588><!--cap_start_1--><!--cap_end_1--></font></td></tr></table><!--imgtbl_end_1-->부도와 파산을 취미로 여기시는 듯하던 아버지 탓으로 유년과 청소년기의 삶이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여전히 화나는 것은 아동기, 청소년기의 고통이 지금까지 지속된다는 것이고 아마도 동생의 자살 밑바탕에는 그때부터 쌓인 삶의 고단함, 희망 없음, 외로움이 빚독촉 서류나 부재 중 전화만큼이나 수북이 쌓여있었을 것이다. 경찰서에서 종이봉투에 담긴 유서와 청테이프, 장갑 등을 건네받으며, 왜 그간 동생과 교류를 하지 않았는지, 동생에 대해 왜 잘 알고 있지 못한지, 동생과 마지막으로 언제 통화했는지에 대해서만 조사를 받았다. 경찰서 입구, 조사받던 사무실, 질문하던 경찰, 길을 안내해준 의경, 그리고 변사체를 처리하기 위해 해야 하는 사인들. 그 과정은 아주 어두웠다. 아마 누군가가 이런 소식을 듣고 시신을 확인하러 가야 하는 발걸음에 동행해주었다면 난 울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변에 위로해주는 사람은 없었고, 누구를 불러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문상도 받기 어려운 자살자의 작고 초라한 장례식장에서 넋을 잃고 보내는 날 중에 가장 많이 만난 사람은 장례식장 사무원이었다. 그는 계속 돈이 얼마 들고 얼마를 더 내야 하는지를 설명했다. 모텔에서 장례식장으로, 장례식장의 보관소, 앰뷸런스 이송, 수의, 관 등의 비용. 돈 없는 사람은 장례도 어려운 세상이다. 그리고 작별 인사는 시민장례공원으로 이송하는 비용을 지불하면서 했다. 공원 장례식장에서 화장을 하고 재가 된 동생의 납골함을 살 것인가, 뿌릴 것인가를 두고 남은 가족 간에 돈 이야기가 오고 갔고, 그때의 슬픔이 내 가슴속 눈물둑을 무너뜨렸다.

그 이후 목숨은 부지하면서 살고는 있는데, 파스칼의 공포처럼 삶이 얼마나 우연적이고 공허하며 무상하고 유한한지에 대해 매일 생각한다. 자살 유가족, 즉 내가 떠올리는 흔한 죽음의 방식은 자살이다. 자살이 전염될 수 있다는 것은 체험해보니 지극히 당연했다. 자살은 관계를 통해 전염되는 1급 전염병이다. 지난 10년간 15만명 가깝게 자살했다. 그 시신을 아이들 포함, 최하 30만명이 목격했다. 관련된 가족은 100만명이 넘는다. 자살자의 10배 정도 되는 자살시도자들이 있다. 그러므로 자살 전염을 차단하고 예방하기 위해서는 여러 방역작업과 백신이 필요하다. 이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 중 자살률 세계 1위라는 수식어는 지겹다 못해 역겹다. 그간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죽음의 징후들을 무참하게 짓밟고 효과적인 대책을 세우지 못한 정부의 무관심과 무능은 기가 찰 노릇이다. 2011년이 되어서야 자살예방법이 만들어졌지만, 이 업무를 담당하는 중앙직 공무원은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조직도상 1명이었다. 예산은 말할 것도 없다. 어디 시골에 다리 하나 놓을 예산도 안되었다. 복지부가 채용한 상근직 자살예방전문가는 단 한 명도 없다. 중앙자살예방센터라는 힘없는 위탁기관을 차려놓고 ‘괜찮냐’는 위로는커녕 분노만 자극하는 허접한 캠페인 몇 개 했다.

이제 문재인 정부에서 획기적으로 진정한 위로와 혁신적인 정책이 나올 것을 기대한다. 행정적으로 주무부서 하나를 설치할 문제가 아니다. 정책은 결국 관심이다. 그래서 자살예방주간에 대통령을 초대한다. 자살 유가족과 대통령 간의 만남을 제안한다. 누구는 핀란드의 자살예방 성공이 심리부검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번짓수가 틀린 이야기다. 핀란드가 자살예방사업에 성공한 것은 무려 5만명을 동원하여 심리부검, 즉 1337명의 자살자 유가족을 직접 만나서 위로하고 자살 사연을 묻도록 하는 정책을 결정하고 밀어붙인 핀란드 국민이 사랑했던 대통령 ‘마우노 코이비스토’의 결단 때문이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넓게 보면 유가족 중 한 분이다. 그러므로 그가 그런 결단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김현수 |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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