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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까지 용산의 미군이 평택으로 이전한다. 그동안 이 땅에 대한 공원화 계획은 개발에서 공원화로, 그리고 민족·역사공원에서 6개의 테마공원으로, 다시 단일한 생태공원으로 바뀌어 왔다.
작년 11월에는 100년을 내다보는 세계적 명소의 생태 중심 공원을 만들기 위해 2027년까지 완료하겠다던 목표시한도 없앴다. 시민에 의해 끊임없이 진화하고, 신축도 하지 않는 공원을 만들겠다고 했다. 매우 바람직한 방향 전환이다.
국토교통부는 이와 보조를 맞추어 국민과의 진정성 있는 소통을 강화하고자 ‘공원탐독’이란 주제의 라운드 테이블을 진행하고 있다. 25일에는 ‘용산공원과 역사유산’이란 주제로 발굴 전문의 고고학자와 근대 건축사 연구자의 발표가 있었다. 정말 어려운 여건에서 차곡차곡 정리해 왔다는 인상이었다.
그럼에도 행사 내내 어떤 역사성을 말하려고 하는지 궁금했다. 그렇지 않아도 계획만 수립한 13년 동안 역사학계와의 협력이 없었다고 볼 수 있는데, ‘역사유산’이라면서 유물과 근대 건축물 하나하나에 대해서만 말했기 때문이다. 역사학에서는 이러한 접근을 소제주의라고 말한다. 그래서 질문하고 싶었다. ‘그래서요?’ ‘어쩌겠다는 것이지요?’.
방대한 분량의 공원화 보고서가 비밀이어서 필자가 혹시 오해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동안 귀동냥한 내용까지 고려한다면, 공원화의 기본 이념인 민족·역사·문화 가운데 역사성과 민족성 부분이 매우 취약한 한 가지 이유는 분명해졌다. 보고서에는 기지 내 특정 지점 또는 용산기지라는 공간 자체의 역사화에 대한 고민이 취약할 것이라는 점이. 좀 더 큰 범주에서 말하면, 보고서에는 일본군 또는 미군 시설이었다는 정도의 간략한 사실이 언급되어 있을지언정, 식민과 냉전(분단)의 압축 공간으로서 용산기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담지 못할 것이다. 8회로 계획된 라운드 테이블에 ‘역사’는 이번이 유일한 데서 유추할 수 있다. 얼마 전 미군이 평택으로 충혼비를 가져가도록 선뜻 동의한 역사인식에서도 시사받을 수 있다. 무엇을 어떻게 기념하고 기억해야 내면화된 식민주의와 냉전문화를 국가공원이란 공간과 그 안의 건축물에 연계시켜 성찰하고 미래를 말할 수 있는지 치열하게 논의한 적이 없었으니 당연한 결과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역사학계의 무관심에도 큰 책임이 있지만, 2005년 공원화의 기본 방향을 생태로 잡을 때부터 역사를 사실상 배제하거나 조경의 한 요소로 소홀히 취급해 온 접근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그 결과 12년이 지났지만 용산기지의 역사나 그와 연동된 문화를 알 수 있는 기본적인 아카이브조차 전혀 구축되어 있지 않다. 단순하게 말해, 혹여 내년에 반환되더라도 부지 내 특정 지점들의 역사에 관해 안내문 하나 제대로 설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제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역사공원은 도시인의 힐링을 방해하는가. 생태공원과 역사공원은 대립된 선택사항인가. 아니다. 용산기지라는 땅의 역사를 알면 누구나 쉽게 납득할 수 있다. 어차피 이전했다고 그 땅이 곧바로 반환되지도 않는다. 최종 보고서도 건축물 내부와 지하공간, 오염 조사 없이 나오니 불완전하다. 그러면 삽 뜨기 전까지 무엇을 해야 할까.
한국 또는 동아시아의 근현대사와 용산기지의 역사는 매우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용산공원을 국가공원화할 수 있는 근거도 여기에 있다. 역사화를 홀시하고 생태공원만을 내세운다면 국립공원으로도 충분하다. 지금은 ‘디자인’을 말하지 말고 역사화를 치열하게 고민할 때다. 그리고 천천히 말하자. 그래야 10년, 20년 후에도 작년 4월처럼 치열한 입점 경쟁이 재현되지 않는다.
국가공원이라면서 지방은 아예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국가공원은 서울시민만이 아니라 국가에 세금을 내는 지방 거주자도 보고 싶어 하는 국민의 공간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은 정책은 악법의 정당화이자 차별이다.
국가공원으로서 용산공원을 만드는 데는 센트럴파크만이 아니라 워싱턴DC의 내셔널 몰 메모리얼 파크(National Mall and Memorial Parks) 일대가 연출하는 공간성과 정치성도 참조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도 한반도의 분단이 동아시아의 분단으로 이어졌다는 깊은 문제의식을 담아야 한다. 우리의 미래는 다자외교보다 다자질서 구축에 있기 때문이다.
새로움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우선 특별법을 개정하여 국토부의 용산공원추진기획단 대신 범정부적인 국가공원위원회를 만들고, 국가공원에 걸맞은 작명도 필요하다. 그런데 이조차도 현 정부의 미래비전이 관건이다.
<신주백 | 연세대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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