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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는 상처다. 신비였던 육아가 상처투성이의 과정이 되었다. 육아는 고통이다. 모든 육아의 과정이 고통일 필요는 없으나, 작금의 육아는 불필요할뿐더러, 나아질 수 있음에도 나아지지 않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들로 점철되어 있다. 육아는 싸움이다. 싸우지 않고는 되는 일이 별로 없다. 나와 사랑으로 가정을 이룬 사람과의 싸움까지 잦다. 그래서 더 분통이 터진다. 육아는 책임이다. 나 홀로 잠 못 자고 감당해야 하는 힘겨운 책임. 함께 책임지는 구조는 말로만 존재할 뿐이다. 오직 고독하고 투철하게 감당해야 하는 무한 책임이다. 그리하여 육아는 절망이 된다. 흔히 지나온 삶에 끝을 고하는 과정이 된다. 삶의 기회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린다. 경력 단절은 너무 중립적인 용어다. 그냥, 여러 가지가 끝이다. 절망을 느낄 일들이 줄지어 서있다. 육아는 고립이다. 고립 속에서 아이와 함께 울분을 키운다. 고립에서 탈출시켜준다는 약속들은 번번이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이런 육아의 긴 고난행군을 힘겹게 버텨서 견디고 나면 사람들은 아줌마라 부르면서 때로는 뻔뻔하다고도 하고, 때로는 주책없다고도 한다. 그리고 자식의 성공으로나마 보상받지 않으면, 너무도 허탈할 것만 같은 인생의 길 위에 홀로 남겨진다. 엄마를 전능하게 하는 육아는 악몽과 같다. 그래서 딸에게 전한다. 나로서 이것은 충분하다고.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저출산의 가장 큰 원인은 엄마, 아빠가 된다는 것의 신비와 행복을 사회가 앗아가 버렸다는 데 있다. 아이를 낳으면 힘들어질 이유는 100가지이지만, 행복을 기대하는 건 도박과 같다. 엄마가 된다는 것, 부모가 된다는 것의 기쁨이 사라진 사회에서 출산에 대한 압박과 경제적 지원만으로 아이를 낳으라고 요구하는 것, 그것은 인간에 대한 모독이다. 삶을 돈으로 살 수 없듯이 생명 또한 돈으로 살 수 없다. 출생의 문제가 돈, 퇴근, 분유 문제가 아님을 왜 모를까? 오후 3시까지 학교에 아이를 두는 일이 얼마나 엄마들의 출산의지를 북돋울 수 있단 말인가?

위니캇은 “인간은 누구나 그를 인간이 되게 한 보통의 한 여성에게 진 큰 빚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한국 사회에서는 온 가족이 한 여성에게 모두 어마어마한 빚을 진다. 또 라캉은 “ ‘나의 엄마’라는 단 한 명의 엄마가 무엇을 바라는지에 대한 질문이 아이의 성장에 중요한 계기를 만든다”고 했다. 엄마들이 육아를 위해 자신의 다른 소망과 꿈들을 버릴 수밖에 없는 사회는 결국 아이들도 제대로 자라지 못하게 한다. 한국에서의 육아는 엄마가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얼마간 혹은 장기간 죽여야만 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숭고를 여혐으로 무시한다.

몇 년 전 한국을 방문해 저출산 문제를 자문한 스웨덴 통계학자 한스 로슬링은 문제해결의 열쇠는 페미니즘의 발전과 결부되어 있다고 했다. 그는 페미니즘이 결국 위기의 한국을 구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말이 제대로 전달되긴 어려웠나 보다. 우리에게 페미니즘보다는 패거리즘이 더 가까운 느낌이다. 여전히 늦도록 떼거리로 모여 술잔을 부딪치면서 목청 높여 ‘위하여’를 외친다. 그 순간 누군가는 아기 앞에서 숨죽이며 고독하게 ‘우라질’을 외치고 있음을 망각한 채로(필자도 예외는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결국 저출산 문제는 엄마됨의 여러 상처들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에 달렸다. 모성보호를 주창했던 존 볼비는 “엄마가 행복하면 사회가 행복하다”고 하면서, “엄마의 행복은 단지 개인의 행복을 뛰어넘는다”고 했다. 즉 오늘의 엄마가 행복해지는 데 필요한 것을 실천해야만 해결될 것이다. 어제의 아빠, 엄마들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엄마, 아빠들에게 실권을 줘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시급한 것은 무엇보다 상처, 고통, 독박, 전투 육아에 따라붙은 성마른 용어들이 사라져야 한다. 그리고 무능했던 이전 정부들의 방침과는 달리 파격, 신선, 용기, 희망을 주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새로운 혁신이 필요하다. 그 혁신은 당사자로부터 나온다. 저출산위원회를 젊은 엄마들이 대거 참여하도록 재구성하라. 임신한 여성들과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나와서 회의하고, 그 어려움부터 개선하면서 엄마들의 행복과 육아의 즐거움, 그리고 그들의 발상에 따라 어젠다를 새로이 설정하자!

<김현수 |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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