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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세월호 추모집회 주최 측을 상대로 제기했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금전 배상 없이 피고(집회 주최 측)가 경찰 피해에 유감을 표하라’는 법원 조정안을 받아들였다. 집회·시위에서 경찰이 입은 피해를 배상하라며 시민을 상대로 낸 손배소와 관련해 금전 배상을 하지 않는 쪽으로 마무리된 첫 번째 사례다. 경찰은 2015년 4월18일 열린 세월호 추모집회에서 시위대가 경찰버스, 무전기 등을 파손했다며 7780만원을 배상하라고 소송을 냈었다. 경찰의 조정안 수용은 이전 정권에서 일어난 비민주적·비상식적 사안을 늦게나마 바로잡았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조치로 평가한다.  

정부나 기업이 시민단체나 언론의 입을 막기 위해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이른바 ‘전략적 봉쇄소송(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이라고 한다. 소송에서 이기겠다는 목적보다는 당사자를 괴롭히고, 심리적·경제적으로 위축시켜 또 다른 비판을 막기 위한 겁주기용 소송이다. 자연히 비판의 목소리가 줄어들고 집회·시위와 표현의 자유는 침해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보수언론과 야당에서 경찰의 조정안 수용을 두고 ‘법치 포기’ 운운하며 반발하는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한심한 주장이다. 국가가 비판 시민에 거액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사회 어느 곳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단순소송이라지만, 그 결과는 정부에 대한 비판을 소송으로 틀어막아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시위 등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기 때문이다. ‘법치’란 이름으로 저질러진 ‘법적 위협’과 다를 바 없다. 미국 29개주에는 전략적 봉쇄소송을 방지하는 법이 제정돼 있다. 스웨덴은 전략적 봉쇄소송을 헌법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고 한다. 이번 기회에 우리도 이런 제도의 입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현재 경찰은 세월호 집회 이외에도 쌍용차 파업, 광우병 쇠고기 반대집회,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등 5건의 비슷한 손배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부끄러운 일이다. 집회·시위는 관리와 대응이 아니라 보호의 대상으로 봐야 한다. 경찰개혁위는 지난 5월 “경찰은 집회·시위의 패러다임 전환을 계기로 손배 소송 제기의 기준을 작성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경찰은 시민을 상대로 낸 다른 입막음용 소송도 전향적으로 해결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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