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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술 죄악세

opinionX 2018. 9. 5. 11:37

죄악세(Sin Tax)의 역사는 뿌리 깊다. 16세기 사치와 향락, 부패 등으로 나락에 빠진 교황청은 재원 확보를 위해 기발한 세금을 개발했다. 당시 성매매를 하는 창녀들에게 세금을 부과한 것이 죄악세의 효시로 꼽힌다. 17세기 영국 국왕 제임스 1세는 “코와 뇌, 폐를 망가트리는 검은 악취”를 막기 위해 담배수입세를 4000% 인상했다. 미국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은 1791년 세수 확충을 위해 주세를 도입하면서 “농민들이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라고 죄악세로 포장했다. 미국 건국 후 최초 반란인 ‘위스키 반란’은 술 죄악세 도입에 대한 농민 반발에서 비롯됐다.

죄악세는 사회 공동체나 타인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물품·용역에 붙이는 세금을 말한다. 국민 건강과 복지 증진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소비행동을 억제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현대 복지국가로 진화할수록 죄악세 대상은 담배·술 중심에서 복권과 경마, 비만 유발 식품과 코카인 등으로 확대되어 왔다.

재정 확충이 절실한 나라들에서 죄악세 도입은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세수 증대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간접세여서 조세저항이 적고 ‘국민건강’이라는 명분까지 있으니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 박근혜 정부가 단행한 담뱃값 인상 결과가 방증한다. 당시 담뱃값 인상 명분은 담배 소비를 줄여 국민건강을 증진한다는 것이었지만, 금연 효과는 크지 않고 세수 효과만 월등히 나타났다. 2015년 담배 세수는 전년보다 무려 51%가 늘었다. ‘담배 죄악세’가 실은 세수 확충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반대론을 증명한 꼴이다.

죄악세의 치명적 약점은 조세 부담이 주로 서민들에게 집중돼 소득재분배 효과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소득이 낮을수록 소비성향이 높은 물품에 주로 붙는 죄악세가 늘면 빈곤층만 쥐어짜는 결과로 이어진다.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술이 담배 이상으로 국민건강에 피해를 준다”며 술값 죄악세 논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건강보험 재원 확충 방안을 묻는 질문 끝에 나온 해법이다. ‘국민건강’은 포장일 따름이고, 건강보험 곳간을 ‘술 죄악세’로 채우려는 발상이다. 정 도입하겠다면, 아마도 ‘위스키 반란’은 아닐지라도 ‘소주·막걸리 저항’은 각오해야 할 터이다.

<양권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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