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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30일로 8월 임시국회가 막을 내렸다. 진보진영은 8월 임시국회에서 소위 ‘혁신입법’을 두고 문재인 대통령과 문자 그대로 입법전쟁을 치렀다. 8월 임시국회가 막을 내리고 9월 정기국회가 시작한 지금, 8월 국회의 성과를 정리하여 9월 국회의 교훈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전쟁이 있었으면 필연적으로 승자와 패자, 그리고 승자도 패자도 아닌 피해자가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8월 입법전쟁에서 승자와 패자 그리고 피해자는 누구인가. 승자는 재벌과 모피아, 패자는 문재인 대통령, 그리고 피해자는 경제적 약자인 ‘을’이다. 왜 그런가.

먼저 이번 전쟁에서 가장 눈부신 전리품을 획득한 쪽은 모피아다. 올해 유일한 숙원사업이었던 기업구조조정촉진법(소위 ‘기촉법’)을 부활시키는 데 거의 성공했기 때문이다. 기촉법은 탄생 때부터 위헌시비에 시달리던 반시장적 법률이었다. 그래서 그동안 정부도 눈치가 보여서 매번 2년 한시법으로 연명시켜왔다. 모피아 관료들은 올해 6월 말로 시한이 다가온 이 법을 연장하기 위해 지난 2월부터 백방으로 뛰었다. 그러나 관치금융 청산과 기업구조조정 시장의 정상화를 주장하는 반대의견에 부딪혀 좌절하고 기촉법은 지난 6월 말 이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8월 중순부터 대반전이 시작되었다. “홍수 때 쓰레기 버린다”고 8월 중점통과 법률 리스트에 슬그머니 이름을 올린 것이다. 그러더니 8월27일, 단 한 차례의 법안 심의 끝에 전광석화처럼 정무위를 통과시킨 것이다. 모피아 만세. 다행히 이 법안은 법사위에서 채이배 의원의 문제제기로 일단 제동이 걸렸다. 그러나 모피아는 최종 성공까지 반 발짝만 남겨놓은 최대의 전과를 올렸다.

두 번째 승자는 재벌이다. 각종 ‘혁신입법’ 여기저기에 재벌이 군침을 흘릴 아이템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가장 뚫기 어렵다는 은산분리 규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과 더불어민주당의 강령까지 꺾으면서 전진했다. 더구나 혁신입법을 상가임대차보호법과 같은 민생법안과 하나의 패키지로 묶는 데 성공해서 ‘인질’까지 확보했다. 이제 방패가 뚫리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이 과정에서 “재벌도 공범”이라는 국정농단 사건의 문제의식은 희미해져가고, 기울어진 운동장은 더욱 기울어지려 하고 있다.

패자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문재인 대통령이다. 7월19일의 분당서울대병원 행사를 필두로 8월7일 인터넷전문은행 행사에서 규제혁신을 강조하고 그 1호 법안으로 인터넷전문은행특례법의 통과를 국회에 주문했지만 일단 패배했다. 패배 그 자체도 체면이 깎이는 일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문 대통령과 정부가 규제혁신의 세부논점에 대해 ‘완전히 무지하고 아무런 준비도 없었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점이다.

은산분리 규제완화 시도가 그 대표적 예다. KT에 은행을 넘기려고 하다가 KT의 공정거래법 위반 벌금형 전력이 나오자 허둥지둥했다. 카카오의 경우 그 계열회사인 로엔 엔터테인먼트가 담합 사유로 1억원의 벌금형을 받았다는 사실이 나오자, 특수관계인의 범죄경력은 심사대상의 예외라고 보호막을 둘렀다.

무엇보다도 카카오가 준재벌로서 곧 ‘재벌’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점도 깜박했다. 당초 박근혜 정부는 은산분리 완화를 추진하면서 “재벌에 은행을 넘기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자산규모 10조원 이상인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소위 ‘재벌’)은 후보자에서 제외했다. 여당의 대표 법안인 정재호 의원안에도 그렇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정작 카카오가 곧 재벌이 될 것이라는 점이 알려지자 모든 원칙을 다 포기하고 카카오 구하기에 나섰다. 그래서 재벌이어도 ICT 비중이 높으면 살려주자고 말을 바꿨다. 정재호 의원안이 틀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ICT 기업에 대해서만 예외를 두자는 말은 곧 이들에게 ‘특혜’를 주자는 말을 멋있게 한 것뿐이다. 이런 눈속임은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의 일갈에 그대로 무너졌다. 그때부터는 그야말로 ‘늪’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 와중에 진정한 피해자는 국민, 특히 경제적 약자인 ‘을’들이었다. 문 대통령은 규제혁신에 매진하기 이전에는 이번 여름 국회에서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꼭 통과시키겠다고 여러 차례 다짐했다. 그런데 이것을 문제투성이인 혁신입법에 인질로 제공하면서 결국 상가임대차보호법을 날리고 만 것이다. 현 정부의 우클릭 변화가 초래한 첫 번째 희생양은 중소상공인이 되어 버렸다. 문 대통령은 본인이 앞장서고 있는 규제완화 광풍 때문에 국민이 희생되고 있다는 점을 깨닫고 있을까.

<전성인 | 홍익대 교수·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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