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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 넘게 결연을 맺은 남수단의 아이는 그동안 내전으로 인해 몇 번인가 소식이 끊겼다가 얼마 전 제3국에 있는 난민수용소로 거처를 옮기게 되면서 후원단체를 통한 도움을 더 이상 받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하니 기존의 후원금을 어떤 방식으로 대체하겠느냐는 질문이 담긴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다른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엄마가 밤새 끙끙 앓는 바람에 한숨도 못 잤다며 더는 간병을 못하겠다고 그냥 가겠다는 간병인의 전화가 새벽부터 걸려온 참이었다. 무책임하게 도망가 버린 간병인에게 항의하면서 동시에 새 간병인을 구하는 와중에 내전으로 집을 잃은 남수단의 아이를 그래서 어째야 하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화가 잔뜩 난 상태로 후원에 대한 절차는 단체가 정한 방식에 따르겠다고 영혼 없이 대답하다가 문득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이는 무사한가요?” 가장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을 가장 나중에 건네면서 목소리가 떨렸다. 전쟁으로 집을 잃은 아이에 대한 걱정보다 새롭게 결정해야 하는 행정적 절차가 더 번거로웠던 나는 사실 엄마에게도 화를 내고 있었다. 아무리 아파도 좀 참지. 간병인 구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데, 엄마는 밤새 왜 그렇게 앓았을까 원망 섞인 분노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던 것이다. 말기암 환자인 엄마의 통증보다 간병인의 피곤에 더 신경 쓰고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서늘한 덩어리가 목울대에 얹혀 전화를 끊고 비로소 나는 좀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엄마는 세상을 떠났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입원했던 날 공교롭게도 보건복지부는 소위 ‘존엄사법’이라 불리는 ‘연명의료결정시범사업’을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엄마는 물론 우리 가족 모두 연명의료는 하지 않기로 결심이 서 있었다. 연명의료로 2년이나 식물인간 상태에 머물렀다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그때는 연명이, ‘의학적으로의 삶’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작별할 수도 있던 아버지를, 의식도 없이 억지로 육체만 세상에 붙들어놓았다 보내고 난 후에야 우리는 그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우리 가족은 다짐했다. 누구도 그렇게 보내지 않기로,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그렇게 보내지 말아달라고 서로가 서로에게 부탁도 했다. 그 약속은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의식이 있던 엄마는, 임종 직전의 고통 속에서도 거듭 그 의사에 변함없음을 밝혔다. 그러나 우리가 비장하게 눈물로 결심한 존엄은 지켜지지 못했다. 임종의 과정을 지키고 있던 의료진이 연명치료에 동의하지 않았다며, 사람은 살리고 보아야 하는 거 아니냐며 큰소리로 비난을 퍼부었던 것이다. 우리가 오랜 세월 어렵게 결심하고 다짐했던 존엄한 죽음은 졸지에 방치한 죽음이 되었다. 세상 마지막까지 살아 있는 것이 청각이라면서 그는 그 비난을 임종 과정에 있는 어머니 앞에서 퍼부었다. 그러므로 엄마가 세상에서 들은 마지막 말은 당신 자식들이 당신을 죽도록 방치했다는 비난일지도 모른다. 사랑한다는 우리의 울음이 그 비난 속에서 전달은 되었을까. 아버지의 연명치료를 결정하고 오래 마음 아팠던 것 이상으로 나는 그 의료진의 비난에 오래 가위눌릴 것이다. 그리고 그 가위눌림은 앞으로 존엄사를 선택하게 될 적잖은 이들이 짊어지고 가게 될 운명이기도 할 것이다.

삶은 과연 어떤 형태로 마무리 지을 때 그 존엄을 인정받을 수 있는 걸까.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사흘 후, 딸아이는 소아암 환우들에게 기부하기 위해 2년 넘게 기르던 머리를 잘랐다. 좋은 상태로 보내야 한다며 오래 가꾸고 다듬은 한 타래의 머리를 봉투에 넣으면서, 한 삶과 이별하고 죽음과 맞서 싸우는 다른 삶에게 위로가 될 무언가를 보내면서 나는 엄마와의 작별을 떠올렸다. 그 비난이 여전히 마음 아프지만 무엇을 선택했느냐가 아니라 누가 선택했는가 말고 누가 무엇이 삶의, 죽음의 가치에 대해 말할 수 있겠는가. 엄마는 누구보다 존엄하게 세상과 작별했다. 그리고 나도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한지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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