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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텃밭을 분양받았다. 두 해 전 인근 지역에 생긴 청소년 종합타운에서는 작년부터 옥상에 열두세 이랑 정도의 텃밭과 열두 개 정도의 텃밭 상자를 만들어 청소년을 포함한 가족 단위의 팀에 분양하고 있다. 일종의 도시농사 운동이라고 해야 하나. 청소년 전문 시설이라는 특성에 의한 일종의 문화 사업이자 교육 사업이다. 

그래서 분양받은 밭은 밭이라기보다는 폭 1m, 길이 2m 정도의 좁은 이랑에 불과하다. 좁다고 말했지만 사실 좁다고만 할 수는 없다. 그 정도 넓이로도 꽤 많은 작물을 심고 거둘 수 있다. 욕심을 내고 그만큼의 부지런을 떤다면 열 가지 종류의 작물도 너끈히 부족하지 않게 키울 수 있다. 나는 작년에 일곱 가지 종류의 작물을 키웠다. 옥상에 만들어 놓은 인공 텃밭이라 불가능할 줄 알았던 뿌리채소까지 포함된 수다.

교육도 받는다. 어떤 작물을 심을지, 어느 시기에 심을지, 어떻게 하면 농약을 쓰지 않고 친환경적으로 키울 수 있는지에 대해 2~3주 간격으로 농업 전문 강사를 초대해 교육도 하고 함께 모여 텃밭을 돌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 외 시간에 분양받은 텃밭을 돌보는 건 각자의 몫이다. 대신 날마다 해야 하는 물 주기는 생업이 따로 있는 저마다의 일상을 존중해 순서를 짜서 돌아가며 한다. 다른 건 몰라도 물만은 나만이 아닌 모두를 위한 노력인 것이다. 그러하니 물 주는 순서만은 마땅히 지켜야 하지만 누구나 그런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약속한 날짜에 오지 않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런 날은 운영을 맡은 부서 직원들이 물을 준다. 물 주는 일 말고 텃밭에 필요한 나머지 일은 각자 알아서 해야 한다. 

덕분에 시들어 죽는 작물은 없지만 고작 한 고랑의 밭마다 작물이 자라는 상태는 천차만별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잡초 하나 없이 지나치게 무성해지지도 야위지도 않고 모든 작물이 고르게 자라는 밭이 있는가 하면 아무렇게나 길러 산발한 머리처럼 모든 작물이 뒤엉킨 밭도 있다. 희한하게 그런 밭은 심은 작물의 종류도 많다. 옥상에서, 혹은 초보가 기르기는 적당하지 않으니 삼가는 게 좋다고 하는 작물도 보란 듯이 심겨 있다. 

그래도 이곳의 옥상텃밭은 밭마다 비교적 구획이 정확하게 나누어져 있고, 직원들이 최소한의 유지관리는 해주어서 이런 밭이 옆에 있다고 큰 피해를 입지는 않는다. 청계산 아래 있는 텃밭농장의 텃밭에서 농사를 짓던 시절에 이런 이웃을 만나는 일은 가뭄과 장마, 태풍을 만나는 일만큼이나 힘들었다. 내가 아무리 성실하게 밭을 가꾸고 작물을 살펴도 돌보지 않은 밭에서 넘어오는 잡초와 그 밭의 작물에서 비롯된 병충해는 어떻게 해도 막을 수가 없다. 내 밭과 이웃한 밭 사이의 고랑에 있는 잡초까지 다 뽑고 천연 약제를 넓게 뿌려도 한계가 있다. 

내 밭인지 네 밭인지 모르고 손을 보고 있다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두서없이 맥락 없이 든다. 이래서 이웃을 잘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우선 들고, 내 것을 포기한다는 건 내 것만 포기하는 게 아닐 수 있다는 생각도 들고, 시작이 좋아도 중간에 포기하면 의미가 없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대체 이 사람은 왜 무엇 때문에 이런 식으로 무책임하게 밭을 방치하는 걸까. 무책임일까, 게으름일까 비난하기도 하고, 그러다 문득 서늘해지기도 한다. 그에게 혹 다른 사정이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왜 중간에 결국 포기한 사람의, 포기할 수밖에 없는 숨은 사정 같은 건 헤아려보지도 않고 매도하고 있는 걸까, 누군가 부득이하게 포기한 자리를 폐허로 방치하는 시스템의 부당함은 왜 한 번도 의심하지 않는 걸까, 하는 생각까지 이르게 된다. 

어쩌면 나는 그런 생각들을 키우려 해마다 부지런히 텃밭에 도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텃밭을 가져본다는 건, 그곳에서 작물을 길러본다는 건, 농사의 고단함을 이해하거나 농부의 땀을 헤아리는 정도의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어느 순간 인생의 단면 단면을 깨닫게 하는 공부는 되기 때문이다. 올해의 텃밭 모종 심기는 4월 둘째 주에 시작된다. 내 텃밭은 그래서 지금은 텅 빈, 그러므로 무한한 텃밭이다.

<한지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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