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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직후부터 이어지고 있는 새 정부의 괄목할 행보에 대다수 국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자고 일어나니 갑자기 세상이 변한 것 같아 다소 당혹스럽기까지 한 이 변화는 지난겨울 우리가 치켜든 촛불의 성과다. 촛불광장이 없었다면 지금쯤 대한민국은 어떤 상태였을까? 국정농단은 현재진행형이었을 것이고 세월호는 아직 차디찬 진도 앞바다에 잠겨 있었을 것이며, 희망을 잃은 사람들은 끊임없이 고공으로 올라가고 있었을 것이다.

광장에서 우리가 몸으로 터득한 교훈은 ‘군중이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교과서적 진리다. 누구나 당위로 받아들이는 명제지만, 인류 역사를 통틀어도 이것을 몸으로 겪은 세대는 그리 많지 않다. 벅찬 행운이다.

그러나 환호와 감격에 머무르고 있을 수는 없다. 마무리를 해야 한다. 광장의 촛불이 추구해온 근본적인 사회개혁이 확고하게 뿌리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말 주요 혁신정책에 ‘대못’을 박겠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큰 대못도 맘먹고 뽑으면 뽑히는 법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열린 ‘찾아가는 대통령-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 행사에서 참석자들을 격려하며 활짝 웃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대못을 언급한 뜻이야 충분히 공감하지만 혁신은 망치로 두들겨 박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속가능한 혁신은 생태계 속에 ‘본연(本然)의 상태’로 뿌리내려야 한다. 마치 태초부터 주어진 것처럼 너무도 당연하여 누구도 의심할 수 없고, 누구도 뽑아 제거하려는 마음조차 품을 수 없는 그런 상태로 뿌리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새 정부가 갓 들어선 시기에 성급하다고 힐난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런 큰 그림을 가지고 접근하지 않으면 언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지 알 수 없다는 것이 역사의 뼈저린 교훈 아니던가?

사회변혁을 꾀할 때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은 대립항적 접근이다. 변혁의 대상인 구체제와 신체제의 대립전선을 설정하고 신체제의 에너지로 구체제를 허무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해 보이지만 이런 접근방식은 필연적으로 구체제의 결속과 반동을 초래하고 변혁의 본래 목적마저 망각하게 한다. 그 때문에 구체제와 신체제의 대립을 훌쩍 넘어선 ‘초체제적 대안’을 창출하고 이것이 사회의 ‘본연’으로 뿌리내리게 해야 한다. 흑백 양분의 대립적 사고틀을 넘어서서 새로운 게임의 규칙이 자리 잡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여’의 촛불광장을 이어받은 이 격동의 시대에 가장 주목해야 할 초체제적 대안은 역시 참여다. 참여야말로 구체제와 신체제의 대립을 훌쩍 뛰어넘을 수 있는 초월적 대안이라는 것이다. 참여는 자유의 확장이다. 확장된 자유를 경험한 국민은 결코 회귀를 용납하지 않는다. 물러서면 다시 노예가 될 것임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진정한 국민 참여가 이루어지면 정부와 관료 엘리트가 모든 것을 책임지고 정책을 입안, 실행할 필요가 없다. 시민사회단체 등 이해관계자들이 국가 정책결정에 폭넓게 참여하여 서로 대립되는 시각과 입장들을 좁히고 공감, 화해, 합의를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는 대지에 깊게 뿌리내릴 수 있다. 과거에도 각종 위원회를 통해 전문가나 시민사회의 의견을 수렴하는 시도들이 있었지만 대개는 의견을 들어보는 데 그치는 형식적인 참여였다. 촛불광장의 정신은 이런 들러리 참여가 아니라 실질적인 의정감시, 입법참여, 국민소환제 등 정책의 결정과 실행 과정에 대한 완전한 참여를 지향한다.

물론 건설적 참여가 쉬운 것은 아니다. 모두의 이익을 고려하는 공동선보다는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 상대를 공격하고 억압하는 ‘파벌의 해악’이 작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벌의 해악을 넘어서서 다양한 집단이 자체적으로 이익갈등을 조정하는 ‘결사(結社)의 예술’을 체득한 시민사회는 불의한 세력의 폭거와 적폐로부터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굳건한 방벽이 될 수 있다.

파벌의 해악을 넘어선 결사의 예술이 일상적 소양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와 오랜 경험축적이 필요하다. 지금부터 진정한 참여의 절차를 개발, 평가하고 최선의 모델을 만들어내는 일관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

신좌섭 | 서울대 의대 교수·의학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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