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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칠맛을 내려고 사용하는 조미료의 대명사 글루탐산일나트륨, 즉 MSG는 논란거리다. 인체에 유해하다는 우려에 못지않게 그렇지 않다는 반론도 팽팽하다. 요리에 풍미를 더하려고 MSG를 사용하듯, 주장에 설득력을 더하기 위해 우리는 종종 관용적 표현을 쓴다. 관용적 표현은 잘 쓰면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압축적으로 정리해준다. 하지만 잘못 갈음하면 말로 포장된 살인무기가 될 수도 있다. 법정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지급하며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를 들먹인다면 매우 부적절하다. 그 말을 듣고 있는 피고용인에게 “젊어서 고생”이라는 관용구는 언어 살인무기에 가깝다. 출근 첫날 “이제 우리 식구가 되었으니 잘해봅시다”라는 말을 듣는 피고용인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는다. “우리는 식구”라는 관용적 상투어가 때론 노동계약상의 피고용자 권리를 감추는 수단으로 악용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믿을 건 식구뿐이다”라는 자주 쓰는 표현 역시 마찬가지다. 엉뚱하게 쓰면 이 표현은 1인 가구나 가족이 없는 사람의 마음에 생채기 내기 쉽다.

곰곰이 따져보면 관용구의 시제는 현재가 아니라 과거이다. 오랜 기간 동안 사람들이 세상에 대해 내린 소박한 지식이 쌓이고 쌓여 속담과 관용적 상투어에 담긴다. 남발되는 관용적 표현은 사유의 습관을 낳는다. 습관적으로 생각하는 한 우리는 현상의 이면을 자주 놓친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믿을 건 식구뿐”이라는 관용적 표현의 안경을 끼고 있으면 식구가 살인을 저질러도 그를 품어주는 가족만 보인다. 관용적 사유에 따른 습관적 사유에 빠지면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존속살인이나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는 비속살해는 있을 수 없는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믿을 건 식구뿐이다”라는 관습적 사유가 가리고 있는 냉정한 사실에 주목해 본다. 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중 존비속 살해사건의 비중은 5%에 달한다. 미국이 2%이고 영국이 1%인 것에 견주어 대단한 수치이다. 게다가 존비속 살인사건은 온가족이 함께 모이는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 칭송되는 추석 전후로 자주 발생한다. 이 통계를 최근에 사회가 흉흉해진 결과라고만 해석하면 적절하지 않다. 1775년 12월부터 1800년 6월까지 정조가 직접 심리·판결한 중죄수에 대한 기록인 <심리록>에 따르면 전체 1004건의 살인사건 중 가족·친족이 대상인 살인사건이 전체의 16%를 차지하는 162건이다. 이 162건 중 절반에 약간 못미치는 70건이 남편에 의한 배우자 살인이다. “믿을 건 식구뿐이다”는 우리의 기대이지 사실은 아닌 것이다.

가족 중의 누군가가 중병에 걸렸다. 관용적 표현에 의한 사유의 관습에 의하면 아플 때 “믿을 건 식구뿐이다”. 그렇다, 간병은 식구의 몫이다. 혹 그 식구가 시간이 없어 직접 간병할 수 없어 간병인을 고용할 경우 간병비 부담 또한 식구의 몫이다. 관용적 사유에 따르면 이것은 가족만이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자 미풍양속이다. 식구 중 한 명이 치매에 걸렸다고 하자. 관용적 표현을 존중하는 관용적 사고에 따르면 이 또한 가족의 몫이다. 가족의 불행이기는커녕 얼마나 가족이 서로 사랑하는지 증명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식구도 알아보지 못하는 치매 걸린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아내, 혹은 그의 아들이나 딸은 방송용 소재로 적합하다. 방송으로 제작만 되면 당연지사로 최소한의 시청률을 확보하는 대감동의 휴먼 드라마이다.

관용적 표현의 안경을 다시 한번 벗고 맨눈으로 세상을 본다. 2016년 통계로 파악되는 치매환자만 68만명이다. 고령화 속도가 지금처럼 유지되는 한 2020년에는 84만명, 2030년에는 127만명까지 늘어나리라 예측된다. “믿을 건 식구뿐이다”가 변주되면 이렇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치매환자를 돌볼 사람 역시 “식구뿐”이다. 남아 있는 식구가 노인이어도 상관없다. 노인이 치매 걸린 노인을 간병한다. “믿을 건 식구뿐”이기에.

74세 노인이자 남편이 있다. 아내가 치매에 걸렸다. 50년을 부부의 연을 맺고 살아온 가족이다. 아내의 치매증상은 점점 심해지는데, 매달 필요한 병원비는 월 120만원을 넘겼고 아내를 돌볼 사람은 “식구뿐”이나 오롯이 남편 몫이다. 자식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은 점점 미안해진다. 치매 걸린 아내의 병간호를 해오던 74세 노인의 체력도 인내심도 한계에 도달했다. 결국 그 노인은 잠들어 있는 아내의 목을 조르고 자신은 농약을 마셨다. 이와 유사한 치매 걸린 배우자를 간병하던 노인이 저지른 배우자 살해 18건을 분석해보니, 배우자를 살해한 사람의 평균 나이는 77.2세이고, 이들은 평균 43년 동안 부부였고, 평균 5.7년 동안 간병했다. 간병의 책임과 간병의 비용을 부담하는 사람이 오로지 “식구뿐”일 때 일어나는 일이다. 여전히 아직도 “믿을 건 식구뿐”이어야 하는가? “믿을 건 국가뿐이다” 혹은 “믿을 건 사회뿐이다”라는 미래의 관용구가 도착할 시간은 아직 멀었는가?

노명우 | 아주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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