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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남쪽 들녘에서는 ‘벼 직파재배 파종 시연회’라는 특별한 행사가 열린다. 직파재배란 별도의 못자리를 설치하지 않고 싹을 틔운 볍씨를 직접 논에 뿌려서 재배하는 방식이다. 흔히 벼농사라 하면 못자리에서 기른 모를 사람들이 옮겨 심거나 이앙기를 이용해 모내기를 하는 이앙법(移秧法)이 연상되어 직파재배라는 말이 다소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3000년이 넘는 우리 민족의 벼농사 역사는 직파재배 방식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다 조선시대 중기 이후 모내기를 하는 이앙법이 제초관리에 용이하고 더 많은 수확량을 낼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널리 보급되어 지금까지 보편화되어 왔다. 하지만 기존의 이앙법은 육묘과정에서 많은 비용과 노동력을 수반한다는 단점을 안고 있다. 그리고 직파기술이 발전하고 기계가 보급되면서 노동력과 생산비 절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직파재배 방식이 크게 주목을 받고 있다.

직파재배의 장점은 첫째, 노동시간을 줄여 일손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못자리 없이 벼를 재배하는 무논점파 직파재배는 기계이앙에 비해 1㏊당 영농 작업시간이 22시간 적게 들어 전체 노동시간을 23%나 절감할 수 있다. 벼농사에 집중했던 시간을 과수나 밭작물 등 다른 농작물 재배에 활용함으로써 농가소득 향상도 기대할 수 있다.

두번째로 생산비를 절감할 수 있다. 직파재배는 이앙법보다 1㏊당 생산비를 75만원 낮출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이는 전체 벼 생산비의 10% 정도를 줄일 수 있는 큰 효과이다. 특히 노동력과 생산비는 절감하면서도 수확량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농가인구 250만명이 무너지고 65세 이상 인구비율이 40%를 넘는 심각한 고령화 현상과 일손 부족에 시달리는 농촌의 실정을 감안하면 직파재배는 획기적인 대안임에 틀림없다.

이에 따라 농협은 직파재배 활성화를 위해 무이자 자금 1300억원과 파종기 등을 지원하는 등 직파재배 확산에 혼신을 다하고 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직파재배는 지난해 52개소에서 올해 117개소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이다. 또한 전남지역 중심이던 재배지역이 경기와 충남, 경남 등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지난 4월에는 ‘직파농협 전국협의회’가 창립되기도 했다. 나아가 2020년까지 참여농협을 200개소로 늘리고 직파재배 면적을 현재 2500㏊에서 4만㏊로 확대하는 한편 농촌진흥청 등 유관기관과의 협력을 강화하여 전문기술 교육 및 보급에도 심혈을 기울일 예정이다.

아울러 공급과잉과 가격하락으로 어려움에 빠진 쌀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농협은 다양한 대책을 추진 중이다. 수급안정을 위해 43% 수준인 수확기 벼 매입비중을 계속 확대하고 사료작물 등 타작물 재배 유도를 통해 생산량 조절에도 힘쓸 계획이다. 올해는 사료용벼 시범단지를 30㏊ 조성할 예정이며 생산조정제와 자동시장격리제, 사료용벼 직불금 도입도 정부에 적극 건의 중이다. 또한 쌀과자·쌀가루 공장을 통해 밀가루를 쌀가루로 대체하고 ‘쌀밥이 맛있는 집’을 설정하는 등 다양한 소비촉진운동도 전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매년 30만t 정도의 쌀을 더 소비할 수 있게 된다면 식습관 변화 등으로 61㎏까지 떨어진 1인당 쌀소비량을 늘리는 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쌀은 우리 5000만 민족의 혼이자 생명의 끈이다. 단순한 곡물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논농사의 공익적 가치 또한 약 20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쌀값 하락과 농가인구 감소라는 어려움 속에서도 벼를 주된 영농으로 하는 농가가 40%에 달한다는 사실은 벼농사가 농업인에게 주는 무게감과 사명감이 그만큼 남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벼농사를 평생의 업으로 여기고 살아온 농업인들이 포기하지 않고 행복하게 농사를 이어갈 수 있도록 농업인의 절박한 마음에서 해법의 길을 찾고, 그분들과 더불어 나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농업인들과 한마음으로 함께할 때 ‘농가소득 5000만원 시대’가 더 일찍 열리고 농협의 비전인 ‘농업인이 행복한 국민의 농협’도 구현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김병원 | 농협중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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