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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여행을 해보면 서로를 정말로 알게 된다고 한다. 좋았던 사이가 더 돈독해질 수도 있고, 괜찮았던 관계가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멀어진 채 돌아올 수도 있다. 한마디로 여행을 통해 관계의 실체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왜일까? 아마 해답은 여행이 함께 지내는 상황을 만들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며칠 동안 동고동락하며 작은 것에서부터 집단적 의사결정을 하다 보면 이게 과연 될 관계인지 얼마간의 답이 나오게 되어 있다.

물론 언제나 답이 명확하지는 않다. 어떤 때는 한 사람은 만족하며 싱글벙글하는 바로 그때 다른 누군가는 다시는 이 사람과 같이 떠나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하고 있기도 하다. 뭔가 잘못된 것이다. 이런 경우는 보통 한쪽에서 뭔가를 삭이고 있는 케이스이다. 불평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차마 말을 못하고 속병만 앓고 있는 것이다. 표현하지 않으면 자기만 손해라는 거야 알지만 천성상 내 입장을 드러내지 못하는 성격. 누구든 살면서 한두 명쯤은 만나는 캐릭터이다. 보는 쪽에서는 답답하다. 아니 그럼 진작 말을 하든가?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쪽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함께한다는 것은, 공생한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살핀다는 뜻이다. 비록 상대방이 선뜻 얘기하거나 티를 내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 구도가 특히 중요하게 작용하는 맥락은 인간과 자연의 공존 문제를 이야기할 때이다. 함께 지구를 공유하는 동식물의 불가피한 침묵을 우리는 너무 무신경하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이 인간의 언어를 구사할 줄 모른다는 당연한 사실만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든 자연에 영향을 끼칠 때, 그 자연의 반응을 우리 본위대로 판단함으로써 별 문제가 없다고 아주 용이하게 자가진단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나무를 무자비하게 가지치기 해버리고도 잎이 어디서든 돋아나기만 하면 괜찮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야생동물을 잡아 열악한 환경에 가둬도 죽지만 않으면 학대가 아니고, 밥 챙겨주고 재워주니 오히려 고마워해야 한다는 식이다. 말 못하는 동식물들의 입장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과학이 있긴 하지만, 누구나 과학자로서 이에 밝은 것도 아니고, 그조차도 생명체의 본심을 모두 드러내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오만이자 교만이다. 점점 자연을 침범하며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는 인간이 가장 조심해야 할 사항 중 하나는 자연의 마음을 넘겨짚는 일이다. 자연과 공존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민감하고 소심한 자연의 성격을 섬세하고 깊이 헤아리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이런 거창한 말이 일상과 무슨 관계냐고? 다음의 간단한 일화가 이 질문에 좋은 답을 제시해주리라 믿는다. 얼마 전, 어버이날에 일어난 일이다. 부모님을 모시고 점심식사를 한 후 인근 공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소화도 할 겸 자연 속을 거니는 것처럼 좋은 식후 코스도 없지 않은가. 게다가 이곳은 바닥포장과 인공조경으로 된 무늬만 공원이 아니라, 옛 지형과 식생이 상당히 남아 있어 나름의 생태계가 어엿이 있는 진짜 공원이다.

느리고 여유 있는 발걸음으로 우리는 걷기를 즐기며 작은 공터에 이르렀다. 정자와 벤치 두어 개, 잠시 쉬어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자리 잡고 앉아 얼마 안 있을 때였다. 어치 한 마리가 푸드덕 날아와 내려앉았다. 그런데 어라, 목욕을 하는 것이 아닌가? 작은 물길이 졸졸 흐르는 곳에서 어치는 첨벙 들어갔다가 정자 난간으로 올라오면서 적시기와 말리기를 반복했다. 기가 막힌 볼거리였다. 조금 있자 직박구리가 이 공개 목욕시연에 동참했다. 어치가 바깥에서 털 때 직박구리는 물에 몸을 담그며 둘은 우리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자연의 삶의 드라마를 눈앞에 펼쳐주고 있었다.

감동에 젖어 있을 그때, 어느 가족이 들이닥쳤다. 새가 목욕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할머니는 손자를 번쩍 들어 새를 향해 접근했다. “짹짹이가 목욕한다!” 너무 가까이 가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할머니는 목욕현장과 가장 가까운 징검다리 돌 위까지 가서 연신 짹짹이를 큰 소리로 외쳤다. 아니나 다를까, 새는 날아가 버렸다. 드라마는 끝이 났다. 에헴. 저기요, 그렇게 가까이 가셔서 새가 목욕을 그만두고 간 겁니다. 나는 보다 못해 한마디를 하고 말았다. 그러고 돌아서는데 고성이 내 등을 때렸다. 그렇게 민감하게 굴지 말라고, 너만 새 아끼는 줄 아느냐고, 무슨 소란이라도 피웠느냐고, 새는 어차피 돌아온다고, 그들은 내게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매우 언짢은 모양이었다.

물론 듣는 나도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새의 마음이다. 편안히 목욕하다 갈 수 있도록 적당한 거리를 두는 행동이 이 여린 ‘새가슴’에 대한 배려이다. 그 정도 방해하는 것 쯤이야 괜찮다고 함부로 넘겨짚지 않는 마음가짐이다.

게다가 새를 잠시 방해한 것이 괜찮다면, 나의 잔소리한마디쯤도 괜찮아야 하는 것 아닌가? 같은 새가슴끼리라면 더욱 잘 살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공생과 공존의 출발점이라고, 야생학교는 짹짹거린다.


김산하 | 영장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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