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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은 고달프다. 내가 속한 사회와 내가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부적응자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어쩌다 보니 여기에 태어나 살게 되었는데 가면 갈수록 나와 이 사회 간의 간극은 커져만 가고 있다. 그것을 매일 같이 목도하면서 생활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사회적인 동물인 하나의 영장류로서 어떤 그룹의 안정된 구성원으로 살고 싶은 심리는 우리의 내재된 본능이다. 동종의 개체들과 어울려 털 고르기도 하고 이도 잡아주면서 나도 이 무리의 어엿한 멤버임을 즐기는 것. 그것이 잘되지 않을 때 인간은 힘들다.
가령 고속버스를 이용할 때마다 나는 타기 전부터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과연 얼마나 시끄러운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자리할지, 이번엔 몇 명이나 휴대폰을 진동으로 해놓지 않고 연신 카톡 소리를 낼 것인지, 실내는 지나친 난방이나 냉방으로 힘들진 않을지 등등. 특히 내가 긴장하는 것은 커튼 치기이다. 햇볕받길 좋아하고 바깥 경치를 감상하고픈 나의 작은 소망은 보통 다른 승객들의 탑승 몇 초 안에 허물어진다. 어찌나 다들 태양을 그리도 싫어하는지, 빛이 비치면 잠시도 참지 못하고 당장 커튼을 닫아버린다. 마치 열대의 뙤약볕이라도 내리쬐는 것처럼 필사적으로 가리는 이 행위에 나는 정말이지 고통을 느낀다. 저 바깥세상의 풍경과 지구 생명 에너지의 근원인 태양에 대한 매몰참이 나를 비통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버스 앞쪽에 설치된 화면에서 비롯되는 괴로움에 비하면 약과이다. 어쩔 수 없이 앞을 향해 앉을 수밖에 없는 좌석배치는 고문과 같은 시청을 강요한다. 움직이는 것만 볼 수 있는 개구리처럼 사람도 동물인지라 아무리 피하고 싶어도 동영상에 눈길이 가게 마련이다. 방송·연예계로 대변되는 세계를 오롯이 마주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내 부적응의 핵심이다. 드라마, 토크쇼, 예능 등이 담긴 콘텐츠와 돌아가는 생리를 도저히 참아낼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라는 거대한 분야 전체에 대한 무모한 한 방을 날리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른 건 몰라도 자연을 대하는 몹시 그릇된 자세를 주된 내용으로 삼는 특정 프로그램이 있어,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펜이라는 칼날을 뽑아들기로 한 것이다.
버스에 앉아 억지로 보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정글의 법칙>이다. 이미 전성기를 한참 넘긴 장수 프로라는 것쯤은 전혀 텔레비전을 안 보는 나도 아는 바이다. 하지만 이렇게 뒷북이라도 치지 않으면 정글에서 연구를 한 자로서의 소명을 배신하는 꼴이 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글의 법칙>은 진짜 정글의 법칙과 완전히 무관하다. 오히려 정반대, 즉 이 세상에서 가장 극단적인 ‘반(反)정글’ 프로그램이다. 궁극적인 야생의 자연왕국인 정글을 감탄과 경외의 자세로 조심스레 접근하기는커녕, 시시껄렁한 게임과 가짜 서바이벌의 장으로 전락시키며 매회 정글을 유린하고 있다. 주된 관심사는 늘 ‘잡아먹을’ 거리이다. 이 프로의 제작진이 촬영지를 정할 때 유일하게 고집하는 기준으로 잡아먹을 게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생물다양성이 가장 우수한 천혜의 자연에서 불필요한 사냥, 채취, 훼손을 일삼으며, 하나하나가 긴 진화적 과정의 작품인 개성 어린 생물을 향해 그저 입맛만 다시는 수준의 내용으로 일관하는 이 프로는 정글을 논할 자격이 없다.
인도네시아 서부자바의 저산지대 열대우림에서 긴팔원숭이를 연구한 필자는 동물에게 아무런 해를 가하지 않는 과학적 연구를 하기 위해서 얼마나 어려운 허가절차를 거쳤는지 모른다. 번거롭고 힘들었지만 마땅한 과정이다. 지구의 자연은 함부로 다뤄서는 안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얼핏 보기에 무가치한 동물의 똥과 같은 물질조차 연구를 위해 채집 및 반출하기 위해서는 엄격하고 긴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그만큼 어느 곳이든 자국의 자연자원은 소중한 것이다. 또한 정글은 보통 그 지역 주민의 생계와 밀접하게 관련된 곳으로, 심지어는 가난하고 헐벗어도 숲속의 생물을 함부로 취해서는 안되기에 당국과 많은 마찰이 빚어지기도 한다. 수많은 환경단체나 활동가들은 점점 사라져가는 정글 서식지와 희귀종을 구하기 위해 현장에서 땀 흘리며 개발 압력, 밀렵꾼, 그리고 무관심과 싸우고 있다. 정글은 지구의 허파이자 생명의 진원지로서 보전과 예찬의 대상이지, 연예인들의 캠핑장이나 요기거리가 아니다. ‘임자 없는’ 정글에 가서 멋대로 취해도 된다고 여기는 자세는 구닥다리 식민지사관의 연장에 불과한 사고방식이다. 자칭 ‘대장’이라는 김병만씨는 국립생태원의 명예홍보 대사로 위촉된 인사인 데도 불구하고 정글의 동물을 향해 화살을 쏘는 따위의 행위를 멈추지 않고 있다. 같은 연예인인데도 오스카 시상식에서 기후변화를 위해 싸우자고 외친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너무나도 대비되는 모습이다. 지금이라도 이런 식의 정글의 법칙 따위는 치우라고, 야생학교는 요구한다.
김산하 | 영장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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