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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세상읽기

광기 바이러스

opinionX 2015. 3. 20. 21:00

지난달, 10대의 김모군이 부모 몰래 출국해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에 가입했다. 다 알다시피 IS는 무고한 민간인들을 공개 참수하는 등 만행을 여러 차례 저질러 인류 공동의 적(敵)으로 지탄받는 세력이자 미국과 그 동맹국들을 적대하는 반미단체다. 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은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 구구한 추측을 했고 언론들은 그가 평소 페미니즘에 증오감을 드러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그가 어떤 집단의 사주에 따라 움직였다고 주장하거나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IS에 가담할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의 IS 가입이 ‘한·미동맹을 공격하는 행위’라고 주장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이로부터 20여일 뒤 50대의 김모씨가 미국대사에게 테러를 가했을 때의 반응은 이와 판이했다. 당시 해외에 있던 대통령은 이를 즉각 ‘한·미동맹을 공격하는 행위’로 단정했고, 대다수 언론은 이를 ‘개인 김씨’가 아닌 ‘반미 종북세력의 일원인 김씨’의 행위로 취급했으며, 경찰은 김씨를 사주한 배후세력이 있다는 전제하에 수사에 착수했다. 여당은 야당을 ‘종북세력의 숙주’라고까지 몰아붙였고, 야당은 김씨가 가입한 단체인 민화협 공동의장에 여당 의원이 있다는 사실을 들어 반박했다. 10대 소년의 행위는 ‘개인 일탈’로 보면서 50대 장년의 행위는 ‘특정 집단의 사주를 받은 행위’로 보는 이런 반응의 차이는 어디에서 유래하는 것일까.

지난 7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한성총회 소속 신도들이 피습을 당한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의 쾌유를 빌며 부채춤 공연을 펼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를 ‘광기’라고 보도했다. _ AP연합


1911년 조선총독부는 지금의 옥인동 경찰청 보안수사대 자리에 순화원이라는 전염병 환자 전문병원을 세웠다. 그런데 당시에는 전염병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법이 없었기 때문에, 이 병원은 환자를 위한 시설이 아니라 아직 전염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환자를 격리하기 위한 시설이었다. 게다가 총독부는 감염자 또는 보균자를 적발해 순화원에 이송하는 임무를 경찰에 맡겼다. 물론 경찰은 질병을 진단할 능력이 없었다. 그들 중에는 민족적 편견에 사로잡혀 조선인 일반을 병균처럼 대하는 자들도 많았다. 그렇다보니 단지 전염병이 도는 때에 ‘열이 있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순화원에 끌려가 거기에서 감염되어 죽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같은 해, 조선총독부는 ‘데라우치 총독 암살 음모 사건’을 조작해 총독 정치를 위협할 것으로 의심되는 조선인들을 마구잡이로 체포, 투옥하고 고문했다. 이른바 ‘105인 사건’이다.

순화원 설치는 ‘세균에 감염된 것으로 의심되는 생체’를 ‘건강한 사람들’로부터 격리하기 위한 조치였고, 105인 사건은 ‘불온사상에 감염된 것으로 의심되는 정신’을 ‘순종적인 사람들’로부터 격리하기 위한 조치였다.

세균과 바이러스가 질병을 일으킨다는 생각이 반박할 수 없는 과학적 지식으로 자리 잡은 것은 20세기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이런 지식의 확산에 동반하여, 사람의 특정한 생각을 세균이나 바이러스처럼 취급하는 태도도 일반화했다. 이에 따라 주로 ‘특정 가문의 구성원’으로 분류되었던 개인들은 ‘특정한 생각을 가진 세력의 일원’으로 재분류되었고, 국가 권력은 역적의 삼족이나 구족을 멸하는 야만적 처벌 대신 국가의 안녕을 위협하는 ‘위험한 생각’을 가진 것으로 의심되는 집단 전체를 격리하거나 물리적으로 소멸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하지만 사실은 이 방법이 역적의 삼족이나 구족을 멸하던 옛 방법보다 훨씬 야만적이었다. 당장 우리나라에서도 유사 이래 수많은 ‘역모 사건’이 있었지만, 그 사건들의 희생자 수를 다 합쳐도 1950년의 국민보도연맹 사건 희생자 수보다 적다. 게다가 이 사건의 희생자들은 ‘전염병 환자’에 비유하자면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한 사람들이었다.

사람의 몸에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은 밝혀낼 수 있지만, 사람으로 하여금 일을 저지르게 만드는 ‘병적인 생각의 요소’는 온전히 밝혀낼 수 없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살인의 동기를 묻는 판사의 질문에 ‘햇빛 때문’이라고 답했다. 사람의 생각과 기분, 외부의 자극, 구체적 행위 사이의 수많은 변수들을 이해하려는 의지없이 행위와 생각 사이에 일대일 대응관계만을 설정하면, 특정한 범죄를 예방하는 방법은 범죄자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 전부를 격리 또는 소멸시키는 것 한 가지밖에 없다. 그러나 이야말로 한 사회에 광기를 확산시키는 생각의 바이러스다. 경찰의 수사 결과가 나온 지금에도 ‘미국대사에 대한 테러는 개인의 일탈행위가 아니라 종북세력이 벌인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40%에 달한다고 한다. 이 수치는 우리 사회가 단지 ‘의심스럽다’는 이유만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소멸시킬 준비를 어느 정도까지 갖추었는지를 드러내는 지표에 다름 아니다.


전우용 |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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