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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에 소설가 방현석의 <십년간>을 집어든 건 우연이 아니었다. 1988년 단편소설 ‘내딛는 첫발을’로 주목받았던 방현석은 7년 만에 첫 장편 <십년간>을 출간했다. 한동네 친구인 ‘겹빨갱이’ 자식 정준호와 부르주아 집안 후손인 이서익을 중심으로 1970년대를 담은 소설이다. 방현석은 치열한 노동운동가로 1980년대를 보냈다. 이어진 1990년대는 소비에트 해체 이후 이념의 대혼돈 시대였다. 진보와 운동이 갖은 모욕을 당하며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청춘들은 80년대를 항변하고 싶었다. 방현석이라면 이런 간절함을 채워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1980년대를 제대로 말하기 위해 70년대를 우회했다. “내 20대의 십년간을 보냈던 80년대. 우리들의 꿈과 도전은 무엇이었던가. 우리들의 시대는 어떻게 흘러왔는가, 우리들의 상처는 어디서부터 비롯됐고 우리들의 사랑은 어느 구비에서 싹텄는가”라고 물으며. 소설 주인공 정준호는 “대가를 치르며 준비하지 않은 사람들의 몫은 역사에 없다”라고 답했다. <십년간>은 원초적 뿌리에 대한 질문이자 지난 시절이 아름답지 않았다면 새날은 결코 없다는 역설이었다.  

노 전 대통령 10주기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하는 시간이다. 그러나 정치의 10년은 더뎠다. 9년 내내 반복됐던 노무현이 남긴 과제, 노무현을 잇는 사람들이란 주제는 올해도 등장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퇴행이 노무현이란 상징 자본을 여전히 유효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10주기는 과거와 달라졌다. 노무현 정부 인사들은 지난 추억을 즐겁게 말하기 시작했고, 노 전 대통령을 조명했던 추모 영화는 <시민 노무현> <노무현과 바보들>에서 보듯 초점을 이동했다. 노무현재단은 이 흐름을 ‘새로운 노무현’이라 했다. 노무현과 새로운 노무현의 간극. 한쪽에선 아직 오지 않은 노무현의 시대를, 또 한쪽에선 새로운 노무현의 시대를 말한다. 노 전 대통령은 그대로인데 불과 1년 만에 무엇이, 누가 변화를 이끌었을까. 24년 전 방현석의 발언대에 서면 보이려나. ‘우리들의(노무현의) 시대는 어떻게 흘러왔는가, 우리들의(노무현의) 상처는 어디서부터 비롯됐고 우리들의(노무현의) 사랑은 어느 구비에서 싹텄는가’.

노무현의 시대와 상처, 사랑을 돌이켜 보면 ‘시민’이었다. 1987년 민주화 이전까지 ‘시민’은 낯선 이름이었다. 1980년 5월 광주 시민들도 폭도로 매도되지 않았던가. 그러던 중 노사모가 출범했다. 당시만 해도 시민단체 회원이 아니면 소외된 ‘시민’이었다. 노사모는 ‘자유로운 개인의 느슨한 연대’를 강조하며 스스로 시민이라 호명했다. “노사모는 낡은 정치를 바꾸려는 한 정치인의 팬클럽을 자인하면서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근대적인 시민으로 성장하려고 노력했다”(노혜경 전 노사모 대표). 특정 리더의 지도를 받지 않은 시민들이 주체로 나서 정치에 영향을 미쳤다는 차원에서 노사모는 시민정치 효시로 평가받았다. 노사모를 비롯해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의 헌법 제1조가 정치적 시민권을 요구한 사례라면, 2010년 지방선거의 무상급식 열풍은 시민정치가 사회적 시민권 요구로 확산한 사례다. “이게 나라냐”고 절규했던 2016년 촛불시민들은 국정농단 세력을 끌어내리며 시민정치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노 전 대통령 인생도 ‘시민’을 빼곤 설명할 수 없다. 민주주의자라는 소신, 여느 정치인과는 다른 경로가 일찌감치 시민에 주목한 이유로 짐작된다. 퇴임 일성도 “시민으로 돌아왔다”였다. 퇴임 다음 날, 봉하마을 방문객들을 ‘시민 여러분’이라고 불렀다. 대통령에서 물러난 직후라 ‘국민’이라 했을 법한데 말이다. 재임 마지막 해 2007년 참여정부평가포럼에선 지지자들을 ‘깨어있는 시민’이라고 명명하며 “참평포럼이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 되어달라”고 요청했다. 

지난 9년간 시민들은 노무현(정신)을 해석하기 바빴다. 그러나 10번째 봄이 되자 더 이상 ‘노무현’만 바라보지 않았다. 지역주의 타파도, 분권·균형발전도, 진보적 시민민주주의도 내 몫이라고 선언했다. 실제 대한민국은 공유경제, 페미니즘, 워라밸 등 시민 주도 사회로 변하고 있다. 반면 ‘못 깨어난’ 시민들도 있다. 불법촬영 동영상을 유포하는 시민, 악플로 고통을 주는 시민, 개혁입법을 가로막는 국회의원 시민. 한 방향은 아니지만 노 전 대통령을 향한 시선을 서서히 거두며 시민인 나를 주목하고 있다. ‘노무현정신’을 신화에서 꺼내 역사로 옮겨야 한다고 믿는 입장에선 반가운 일이다. 노 전 대통령이 신화라는 강력한 프레임에 갇혀 있는 한, 정치권은 지속적으로 정쟁을 시도할 테고 그리되면 사회는 퇴행할 수 밖에 없다. 노 전 대통령의 부재를 아파하는 시민들은 아직 ‘새로운 노무현’과 만날 준비가 안됐다고 고개 젓는다. 하지만 운명의 주인으로 살다 보면 언젠가는 ‘새로운 노무현’ 곁에 시민으로 서게 될 것이다. ‘패러다임 전환은 축적된 패러다임이 아닌 혁명자에 의해 이뤄진다’고 한 토머스 쿤의 말은 단순히 과학혁명에만 해당되지 않을 테니.

<구혜영 정치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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