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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대표는 전직 공안검사. 의원은 113명. 당 강령은?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지만 무시하는 게 좋다. 실제 당 활동과는 아무 상관없기 때문이다. 굳이 말하자면 전부 가짜다. 진짜 강령은 따로 있다. 절대 비밀이라 활자화하지 않았다. 그걸 공개한다. 

 제1조 반정치. 시민들의 정치참여는 우파 기득권을 위협한다. 만일 연동형 비례대표제, 18세 선거권이 도입되면 분별력 없는 대중들이 나라를 휩쓸 것이다. 그러므로 다당체제나 국회 활성화로 시민 다수의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되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비례대표를 없애고 의원수를 대폭 줄여야 한다. 필요하다면 폭력을 써서라도 선거제 개혁을 좌절시키고, 기회만 있으면 국회를 보이콧하고, 그것도 안되면 막말 망언 가리지 않고 배설하며 시민들이 정치에 넌더리를 내도록 해야 한다.  

제2조 배제의 정치. 시민의 정치 이탈로는 부족하다. 시민의 정치 접근 자체를 막아야 한다. 먼저 동성애, 소수자, 약자를 타자화함으로써 주체가 될 수 없음을 깨닫게 해야 한다. 보수 개신교 외의 타 종교에 대해서는 의례적인 존중의 표현도 용납하면 안된다. 당의 비밀 종교인 보수 개신교에 대한 충실성은 타 종교의 존재를 무시할 때 더욱 깊어지는 법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다양한 세력의 공존은 허구이자 위선이라는 당의 유일사상을 전 사회가 학습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제3조 갈등 촉진. 한국에는 좌파·우파, 종북·반북만 있으며, 둘 사이는 화해 불가다. 종북 좌파는 자기모순 심화에 따라 스스로 궤멸함으로써 역사의 종말을 맞을 것이다. 그러나 저 문재인 정권을 앞에 두고 좌파 청산을 역사의 숙제로 미를 수는 없다. 지금 우리 손으로 끝장내야 한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정부 명령을 거부하라고 군을 선동하고, 남북 화해를 저주하고, 남남갈등을 부추기고, 한·미를 이간하고, 그래도 할 게 없으면 외교비밀이라도 폭로해야 한다. 대결의 불꽃이 한시도 사라지지 않도록 어떤 충돌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사회 균열이 구석구석까지 깊고 넓게 퍼질 수 있다. 분열은 악이 퇴치되고 선이 구현되고 있다는 증거다. 

제4조 이념 대결. 낡은 방식이지만 사람을 흥분시키고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데 이만한 게 없다. 물론 반정치, 배제, 갈등 촉진도 수월한 편이다. 사실, 정치가 어렵지 반정치는 쉽다. 통합이 까다롭지 배제, 식은 죽 먹기다. 갈등 조정이 힘들지 갈등 조장,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념대결은 더 쉽고 더 효과적이다. 따로 준비할 것이 없다. 어떤 정책도 필요 없다. ‘좌파독재’ ‘김정은 대변인’ 운운하며 공연히 시비 거는 것으로 충분하다. 4대 비밀 강령을 가진 정당이 ‘2020경제대전환위원회’를 구성, 민생 정책을 제시하겠다고 했다. 위장술치고는 허술하다. 관심도 대책도 없는 그들에게 민생은 너무 어려운 과제다. 당의 체질과도 맞지 않는다. 세상이 갑자기 미쳐서 민생 논의로 빠져들면 우파는 누가 지키나? 절대 그쪽으로 시선이 쏠리게 놔둬서는 안된다. 여태 해온 것처럼 4대 비밀 강령을 따라 쉽게 가야 한다. 사람은 역시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걸 제일 잘하기 마련이다. 조만간 세상은 민생이란 이름의 이념전 2라운드를 보게 될 것이다. 고만고만한 정책적 이견이 어떻게 근본적 차이로 변하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쯤해서 비밀 하나를 더 공개해야겠다. 다른 정당이 피해보는 일도 막아야 하니 어쩔 수 없다. 당명 폭로다. 자유한국당.

 
한국당은 이러지 않아도 정치를 잘할 수 있었다. 진보·보수 간 이견이 있는 정책 가운데 대화로 좁힐 수 있는 것들이 의외로 많다. 한 연구에 따르면, 정책 이슈에서 사람들이 진보·보수 이념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경우는 10% 이하였다. 대부분 이념과 상관없이 이슈별로 선호를 나타냈다. 한국갤럽이 문재인 정부 출범 2주년을 맞아 정책을 설문조사한 결과도 시사적이다. 대북 지원을 찬성한 보수 응답자는 28%, 반대한 진보 응답자는 25%로 교차했다. 진보층 44%는 경제정책을 못한다고, 보수층 38%는 복지정책을 잘한다고 했다. 여야가 정책 경쟁을 하면 이념을 넘어 사회적 합의를 이를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책임 있는 정당이나 그런 것에 흥미를 느끼지 투쟁하는 정당은 아무런 느낌이 없다. 황교안이 이끈 한국당 3개월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문득 개념 하나가 머리를 스치자 모든 의문이 깨끗이 풀렸다. 정부 타도에 나서고, 국회를 무력화하며 문민통제를 부정한 것, 다른 야당과도 비타협적 투쟁한 것이 모두 설명된다. 반체제 정당. 반체제 정당은 집권이 아니라 체제 자체를 뒤집는 게 목표다. 집권할 생각이면 절대 이러지 못한다. 한국당의 행운을 빈다. 

<이대근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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