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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훈 국가정보원장과 양정철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장이 지난 21일 저녁 비공개로 4시간30분 가까이 회동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 자리에는 현직 중견기자 1명도 동석했다. 양 원장은 “사적인 지인 모임이어서 특별히 민감한 얘기가 오갈 자리도 아니었고 그런 대화도 없었다”고 했다. 그건 그의 주장일 뿐 두 사람의 회동은 여러 면에서 오해를 사기에 충분한 사안이다. 

양 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최측근 친문 인사다. 그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5월 해외로 출국해 2년간 유랑생활을 한 것도 현 집권세력 내 자신의 위상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그가 돌아오자마자 국가 최고정보기관의 수장과 비공개 회동을 했다는 건 누가 봐도 부적절한 처신이 아닐 수 없다. 문재인 정부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해외로 떠났던 초심에 비쳐보면 회동은 더욱 피했어야 한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5월28일 (출처:경향신문DB)

양 원장은 현재 집권여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연구원장에 취임하면서 “정권교체의 완성은 내년 총선 승리”라며 “민주연구원이 총선 승리의 병참기지가 될 것”이라고 했다. 지금은 총선을 10개월 앞두고 여야가 총력전에 돌입한 민감한 시기다. 설령 그의 말대로 정치 얘기는 없었다 하더라도 총선 전략을 짜는 여당 실세와 국가정보기관 수장이 만났다는 것 자체가 여러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양 원장은 “제가 고위 공직에 있는 것도 아니고 공익보도 대상도 아닌데 미행과 잠복취재를 통해 일과 이후의 삶까지 이토록 주시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양 원장 밑에 부원장으로 초선 의원 3명을 포함한 5명이 포진해 있다. 그를 재선이나 3선급으로 대우하고 있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정당의 정책연구소는 정책의 개발·연구 활동을 목적으로 국고 보조를 받고 있다. 이런 자리에 있는 인사가 공인(公人)이 아니라면 누가 공인인가.  

민주당이 이번 회동을 두고 “개인적인 만남”이라고 감싸고 도는 건 몹시 안이한 대응이다. 이전 정권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졌어도 대수롭지 않게 그냥 넘어갔을 것인가. 문재인 정부는 국정원의 국내 정보 분야를 없애고 권력기관 개혁 차원에서 정치 관여를 제도적으로 막는 방안을 추진해 오고 있다. 아울러 전임 정권의 국정원장들은 정치개입 등의 혐의로 줄줄이 단죄를 받고 있다. 이런 마당에 두 사람은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과 탈(脫)정치화 의지를 의심받을 빌미를 스스로 제공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지금이라도 회동의 전모를 소상히 밝히고 사과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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