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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사석에서 만난 유시민 작가는 “행복하다”고 했다. 뭐 그리 행복하냐고 물었더니 “싫은 사람 안 만나도 되니까”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농경사회는 인적 네트워크가 70~80명 정도다. 이 정도까진 못 줄이겠지만 더 좁아져야 된다”고 했다. 정계 복귀 답변을 끌어내려 애썼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불러도 절대 안 갈 것”이라고 하며 말려들지 않았다.

1년이 지났다. 호칭부터 달라졌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다. 유 이사장은 가짜뉴스 척결과 정책 내비게이터를 자처하며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 ‘고칠레오’를 맡았다. 여전히 정치 복귀엔 손사래를 쳤다. 행복하기 위해 좁아지겠다던 유 작가는 오히려 넓어졌다. ‘알릴레오’는 일주일 만에 구독자 약 73만명을 확보했다.

유시민 작가. 돌베개 제공

인물은 인물이다. 정치 안 한다는 선언에도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상위권에 오르내린다. 정치와 비정치의 경계에 있을 때조차 ‘과연 세상이 유시민을 불러낼까’, ‘(그래도 안 움직인다면) 어떤 상황이 닥쳐야 유시민이 나올까’라는 질문이 기다리고 있다. 새삼스러운 인기는 아니다.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이 본격 등판하기 전에도 야권 1위 주자였다. 그러나 현재는 정치권 밖, 여권 울타리에 있다. 바람의 세기가 훨씬 강력해졌다. 그래서 유시민 열풍에 가려진 정치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거꾸로 읽는 유시민’이다.

지금 유시민 열풍은 대선 출마라는 한방향만 향하고 있다. 유 이사장 의도보다 정치를 바라보는 낙후된 시선 탓이 크다. 언론의 책임이 작지 않다. 유 이사장이 떠나온 과거 영토에서 흔적을 찾아 현재 서 있는 땅에 대입하는 낡은 상상력. 인물 중심으로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을 탈피하지 못한 것이다. 유 이사장이 어떤 세상을 만들 건지 듣기도 전에 온통 대선 출마에만 관심을 쏟는다. 인물 중심 정치는 포퓰리즘으로 옮아가기 쉽고, 진영 충돌을 불러온다. 진영 대립이 격화할수록 정치와 삶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언론이 요구했던 정치개혁 일순위는 ‘인물에서 시스템 정치로’였다. 언론의 타성이 유시민 열풍을 인물 정치에 가둔 건 아닐까.

게다가 유 이사장은 인물 정치로 풀이하는 데 ‘손 쉬운’ 캐릭터다. 정치적 지지세보다 개인적 지지세가 큰 편이다. 강력한 지지층과 강력한 반대층이 있다.

또 자유주의적 기질이 강하다. 정치인 시절에도 집권을 위한 궤적에 충실하진 않았다. 2011년 야권의 집권 전략 전진기지였던 혁신과통합에 불참한 것이 대표적이다. 최근 유튜브 방송에선 “정치를 다시 하면 365일 을의 위치로 무조건 가야 한다. 무거운 책임을 안 맡고 싶다”고 했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을 을(乙)로 호칭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다음으로, 유시민 열풍이 보수진영의 여권 분열 카드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유 이사장을 집중 조명할수록 다른 여권 후보군은 소외된다. 대선이 임박한 상황에서 유 이사장이 다른 후보를 앞서는 데도 끝까지 출마를 고사할 경우 여권은 속수무책이다. 그렇지 않아도 안희정 전 충남지사, 이재명 경기지사 등 여권 주자들의 부침이 끊이지 않고 있다. ‘유시민 호출령=여권 경쟁자 배제 전략’이 극단적 전제라 해도 장외 인물을 향한 지대한 관심은 이상 징후에 가깝다. 변화하는 시대의 패러다임에 맞춰 법과 정책을 만드는 현역 정치인들을 외면한다는 건 정치가 바뀌지 않길 바란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유 이사장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이 누구인가도 중요한 문제다. 유 이사장은 유튜브 방송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끊임없이 소환했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설명하면서도 문재인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의 차이를 빠뜨리지 않고 비교했다. 지난 7일 ‘고칠레오’에선 “자네는 정치하지 말고 강연을 하라”고 한 노 전 대통령의 당부를 소개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변치 않겠다는 굳은 맹세를 할 때 부모와 가족을 걸고 약속한다. 노 전 대통령 말을 전할 때 ‘정말 정치할 생각이 없구나’란 걸 직감했다. 유 이사장과 함께 방송하는 배종찬 인사이트 케이 연구소장은 “유 이사장이 노 전 대통령을 말할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노 전 대통령을 마음에 담아둔 사람들이 유 이사장을 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알릴레오’에서 비롯된 유시민 열풍이 노 전 대통령과 무관치 않다면 이는 노무현재단 이사장 직분에 충실한 결과이다. 그런데도 ‘알릴레오’ 인기를, 노 전 대통령 등장을 유 이사장의 대선 출마와 연결하는 분석이 난무한다. 이쯤에선 다른 질문도 필요할 것 같다. 유 이사장이 대선에 나와야만 노무현 정신이 죽지 않는 건지, 노무현의 사람들이 소진되기 전엔 정말 여권은 새 인물, 새 가치가 없는 건지.

‘거꾸로 읽는 유시민’은 정치가 변해야 한다는 역설이다. 유시민 열풍 속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정치, 유능한 정치에 대한 기대가 담겼다. 유 이사장에 대한 기대를 대선 출마 문제로만 묶어둔다면 유시민을 호출하지 않는 세상이 어쩌면 더 나은 미래일 수 있겠다. 그렇지 않아도 유 이사장의 오랜 지지자는 “우리는 유시민이 행복하면 된다”고 했다.

<구혜영 정치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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