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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들이 문제다. 충청북도의원 4명이 물난리가 난 지역을 뒤로하고 외유성 해외연수를 떠나서 시민들의 분노를 샀다.

충청북도의원만이 문제는 아니다. 5월 말에는 광주 서구의회 의원들이 여행사의 패키지 여행상품으로 공무 국외연수(해외연수)를 다녀와서 논란이 되었다. 의원들이 일반인과 섞여서 관광지 중심의 일정을 다녀와 놓고, ‘공무 해외연수’라고 한다니 한심한 일이다.

지방의회만이 문제가 아니다. 국회에서는 21일 추경예산을 통과시키는 본회의가 열렸는데, 정족수가 모자라서 1시간 가까이 회의가 지연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 중에서 26명이 본회의에 불참하는 바람에 발생한 일이다. 그 26명 중에는 불가피한 일정이 있었던 사람도 있겠지만, 뚜렷한 이유가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지역구 행사에 참석한 사람도 있다고 하니 한심한 일이다.

새로운 대통령 취임 이후에 첫 번째 추경예산을 통과시키는 일보다 여당 의원들에게 더 중요한 일이 있는가? 추경예산 편성방향이 타당하냐 아니냐를 떠나서 정치인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책무성에 관한 문제이다. 이러니 국회나 지방의회가 신뢰받을 수 없다. 그래서 시민들 중에는 국회나 지방의회가 아예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얘기하는 분들도 있다. 심정은 이해가 간다. 의원 숫자를 줄이자는 ‘포퓰리즘 공약’이 나오는 배경도 이런 이유다. 지난 대선에서도 몇몇 후보들이 국회의원 숫자 줄이자는 것을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의회를 없앨 수는 없다. 대의민주주의를 하는 이상 의회는 필요하다. 의원 숫자를 줄이는 것도 답이 아니다. 그것은 ‘더 나쁜 의회’를 만드는 방법이다. 숫자를 줄이면, 특권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300명 국회의원 중 1명이라고 해도 특권의식에 찌들어 있는데, 200명 중에 1명이 되면 목에 힘이 더 들어가기 마련이다. 진짜 국회개혁을 원한다면, ‘특권은 줄이고, 의석은 늘리는’ 접근법이 필요하다. 우리와 인구가 비슷한 나라들의 국회의원 숫자를 보면 대체로 우리보다 많다. 인구가 6400만명 남짓한 영국의 국회의원 숫자는 650명이다. 인구가 8000만명이 조금 넘는 독일의 국회의원 숫자는 현재 630명이다. OECD 국가 평균을 보면 대략 인구 10만명당 1명의 국회의원을 뽑는다. 그렇게 따지면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숫자 300명은 적은 편이다.

주권자인 시민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지금의 국회예산으로 300명이 아니라 360명의 국회의원을 쓰는 것이 이득이다. 올해 국회예산 5744억원이면 충분히 360명을 쓰고도 남는다. 진짜 제대로 된 국회를 원한다면,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되,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고, 중앙선관위도 지지하는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제로 도입하려면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360명으로 의석을 늘리고 비례대표 의석을 100명 이상으로 늘리면,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와 함께 정당의 공천개혁을 병행하면 대한민국 정치는 혁명적으로 바뀔 것이다. 1993년 뉴질랜드도 선거제도 개혁을 하면서 99명의 의원정수를 120명으로 늘렸다. 그렇게 해서 제대로 된 국회를 구성하는 것이 주권자에게는 이득이다.

지금 시민들이 국회의원을 보기 싫어하는 이유는 그들이 누리는 과도한 특권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은 ‘우리가 무슨 특권이 있냐’고 하지만, 누구의 시선으로 보느냐가 중요하다. 예를 들면 국회의원들이 받는 연봉 1억4700만원(2016년 기준)은 장차관급 연봉에 맞춘 액수라고 한다. 그런데 왜 국회의원들이 장차관급 대우를 받아야 하나? 국회의원 연봉이 맞춰야 할 기준은 장차관 연봉이 아니라, 노동자 평균임금이 아닐까? 실제로 스웨덴 같은 유럽 복지국가들의 국회의원은 그 나라 노동자 평균임금보다 조금 더 많은 수준의 연봉을 받는다.

이처럼 국민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지금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모든 것이 문제다. 왜 국회의원들은 개인보좌진 7명에 인턴 2명까지 둘 수 있어야 하나? 물론 열심히 일하는 국회의원은 ‘지금 개인보좌진으로도 너무 바쁘다’고 얘기하지만, 그것 역시 국회의원의 시선일 뿐이다.

지금 국회의원 개인보좌진이 하는 일 중 상당수는 불필요하거나 효과적이지 못한 일들이다. 지역구 관리, 비생산적인 정쟁, 건수 채우기 식의 법안 발의에 드는 에너지 빼고, 어떻게든 언론에 한 번 나기 위해서 몰두하는 에너지를 빼고 나면, 진짜 국가를 위한 정책개발에 쏟는 에너지는 얼마나 될까? 지방의원 해외연수, 국회의원 해외출장도 마찬가지다. 왜 관행적으로 해외연수, 해외출장을 가나? 정말 필요한 것이라면 당연히 가야 하지만, 실상은 예산이 책정되어 있기 때문에 가는 것에 불과하다.

이제는 이런 수준의 국회, 지방의회는 보고 싶지 않다. 그래서 국회, 지방의회의 전면개혁이 필요하다. 개혁을 하려면, ‘특권폐지 시민위원회’ 같은 것을 구성해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들이 스스로 할 가능성이 없기에, 주권자들이 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국회와 지방의회를 구성하는 규칙인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다양한 정당들이 정책으로 경쟁하도록 만들고, 특권과 부패에 찌든 정당·정치인들을 퇴출시키는 방법은 선거제도 개혁뿐이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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