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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국회 직원이 언론에 고정칼럼을 쓰는 경우는 조 박사님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열심히 하세요.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며칠 전 국회 경내에서 마주친, 인품좋기로 소문난 한 수석전문위원께서 내게 격려차 건넨 인사다. 그분은 늘 직원들을 칭찬하고 지지해주시는 분이기 때문에 내게도 그렇게 말씀해주셨지만 부끄럽기 짝이 없어지고 내 마음은 무거워진다. 입법부 공무원이 특정 언론사에 칼럼을 쓴다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내 사진과 내 이름의 글이 나오는 날에는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더욱 내 자리에 ‘짱 박혀’ 은둔을 즐기며 일하곤 한다.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의 의무가 있는 조직생활을 하기 때문에 자신의 언행에 더욱 보수적이고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데 소극적인 편이다. 조직의 흐름을 끊는 사람은 ‘좀 튀는 사람’으로 분류되어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 수 있고 승진에 있어서도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있다. 더군다나 신분이 불안정한 공무원이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허점을 드러내는 것일 수 있다. 경쟁이 내면화되어 있는 기관에서는 자칫 “업무에 소홀한 것 아니냐, 글 내용이 좀…”이라는 뒷담화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남보다 더욱 열심히 뛰어다녀야 하는 부담도 있다. 의원실의 여성 관련 조사분석 요구서에 대해 기일 내에 조사·연구하여 회답을 해주고 보고서도 작성하며 기관 내 이런저런 행사에도 참여하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른다. 그동안 “아… 이번주는 통과. 도저히 시간이 안될 것 같아”라고 말하려고 하다가 결국은 낯선 지역의 PC방에서, 혹은 사무실에서 1시간 내에 후다닥 써서 글을 보내기도 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경향DB)

최근 10여년간 이러저러한 잡글을 쓰면서 ‘가족’에 대한 화두는 사랑의 공동체, 사랑의 안식처 등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된 중산층 핵가족을 파헤치는 것이었다. 즉 소위 미혼의 자녀와 성역할이 내재된 남녀 부부로 구성된 가족이야말로 보편적이고 정상이라는 가족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것이다. 한때는 내가 성장한 가족부터 비판하는 글을 써댔고 지금은 결혼으로 구성된 나의 가족을 거리두기 하기 위해 노력했다. 금요일자 신문에 칼럼이 나오면 가장 관심 있는 사람은 친정어머니시다. 80살이 가까워오시는 친정어머니는 내가 언론에 기고한 글을 모두 오려서 스크랩하고 계시고 가끔 전화하셔서 “그래… 네 글을 읽다 보니까 맞는 말인 것 같더라”라는 말씀까지 해주신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족은 ‘애정·의무와 책임’ 때로는 ‘폭력과 억압’ 등으로 다가온다. 정상가족이데올로기가 만연한 사회에서 자기의 가족이야기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나는 내 글의 합리화와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멋진 이론가를 인용하지 않고 한글만 읽을 줄 아는 사람이면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쓴다는 글쓰기의 원칙을 갖고 있다 보니 ‘가족이야기’라는 칼럼은 내 이야기부터 재미있고 쉽게 풀어나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것도 늘 내게는 무거운 숙제이다. 더 이야기하고 싶고, 그러면서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과 “아니야. 거기까지만. 더 이상은 안돼”라는 갈등 속에서 글을 써내려갔다.

매주 가족이야기로 칼럼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기에 좀 쉬고 싶은 욕망과 더 도발적이고 섹시한 글을 쓰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현실적 욕망 속에서 여전히 헤매고 있다. 이것은 바로 가족이 처한 현실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예쁜 포장지 속의 가족과 현실 속의 아픈 가족 사이의 차이. 가족정책은 현실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현실 속의 아픈 가족이야기들이 더욱 많이 터져 나와야만 제대로 된 가족정책의 첫 단추를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망설이지 않고 도발적이고 섹시한 글을 쓸 수 있도록 조금은 천천히 가려고 한다. 그리고 “엄마. 이제 신문 건성으로 적당히 읽으시기를 바라요~”.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기획된 가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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