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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민족고유의 명절이 다가오고 있다. 다음주가 추석이지만 벌써부터 추석선물, 추석연휴 보내는 방법 등을 놓고 안부가 오간다. 알고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명절은 골칫덩어리이다. 명절 때 멀리 이동해야 하는 사람들은 벌써부터 도로사정이 안 좋을 생각에 마음이 무겁고, 시집에 가서 해야 할 명절노동이 유난히 많은 사람들은 진즉 온몸이 아파왔다. 경제형편이 넉넉지 않아 가족들을 만나기가 부담스러운 사람은 명절이 더욱 징글징글하게만 느껴질 것이다. 친척들로부터 듣게 될, 안부를 빙자한 잔소리가 싫어서 명절 때 가족들로부터 탈출할 궁리를 하는 사람들.

우리나라에서 1990년대 중반 이후 명절풍속도가 조금씩 변해오고 있다.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1997년 말부터 IMF 시기, 즉 “사오정(사십대, 오십대 정년퇴직), 오륙도(오십과 육십이 되어서도 정년퇴직을 하지 않으면 도둑)”라는 말이 유포될 즈음 명예퇴직하거나 정리해고 당한 사람들, 망한 기업가와 자영업자들이 속출했다. 그중에 명절 즈음하여 식구들이 많이 모이는 큰아버지 가족들도 많이 포함됐다. 큰집은 작은집이 되어 버렸다. 소위 ‘큰집’은 풍비박산되거나 큰집을 처분하고 큰집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 경우도 많다. 반드시 장남이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전통 아닌 전통은 변하고 있다. 명절노동이 예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간소화됐고 가벼워졌다.

다음으로 큰집 혹은 다른 친척집에 모인 가족구성원들이 공통의 대화주제를 찾기 어렵다. 알고 보면 형제와 부모, 친척들처럼 이토록 긴 시간을 함께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처럼 할 이야기가 없는 집단을 찾기 어렵다. 그러니까 가족들이 모두 모인 명절 때 눈뜨기 전부터 잠들 때까지 먹는 것에 집중하는 이유 중 하나는 서로 모여서 딱히 할 말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어차피 먹는 것을 둘러싼 행위들은 생존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본능처럼 당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더군다나 자식이 타지에서 살고 있는 부모는 함께 있는 잠시라도 맛있는 음식을 자식 입에 넣어주고도 싶으리라.

 

(경향DB)

 

그렇지만 명절 때 가족들이 먹는 것에 이토록 집착에 가깝도록 몰두하는 이유 중 하나는 가족 내 흐르는 남녀 간, 연령 간 갈등관계를 무마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내포된, ‘가족애’로 포장된 잠재적 갈등 은폐행위이다. 그리고 먹는 것을 준비하는 행위 자체는 비교적 분명한 남녀 간 역할을 담고 있다.

여성들의 명절노동, 명절증후군은 여성들이 부당하게 부담하는 가사노동과 시집중심의 가족가치에 맞추는 데서 생겨나는 감정노동의 피로감이 핵심이다. 가족은 함께 먹는 것에 집중해 있는 정치적 행위, 이러한 행위에 내포된 성역할이 유지·재생산의 원동력이다.

여성들은 죽어라고 일하고, 가족끼리 먹고 마시다 지쳐 한마디 툭 던진다. “공부는 잘하니?(공부 못하면 가르쳐 주시던가)” “취직은 했냐?(안 했으면 취직시켜 주실래요?)” “결혼은 언제 할래?(좋은 사람을 소개라도 해주시던가)” “애는 언제 낳을 건데?(애 낳으면 키워 주실래요?)” 명절 때 단골처럼 나오는 대화들. 한편으로 서로 간 궁금하기도 한 소식들. 그렇지만 결코 해서는 안되는 질문목록들이다. 별로 관심도 없으면서 툭툭 내뱉는 질문들에 많은 사람들은 마음이 아파온다.

휘영청 밝아오는 달을 보며 손 모아 빌어본다. “망한 큰집에 작은 희망이 생겨나길” “적당히 먹고 명절노동이 줄어들기를” “친척들끼리 상호간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대화가 오갈 수 있기를” “부모부양과 상속문제로 부모·형제 간 칼부림과 공기총 난사 등의 폭력기사가 없기를”. 마지막으로 저처럼 고3인 수험생을 둔 부모에게 “어느 대학 가려고 하냐?”는, 징역 3년형에 처하고 싶은 가혹한 질문도 삼가 주시옵소서.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기획된 가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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