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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사람들이 쓰는 말에 대해서 그렇게 꼬치꼬치 따지고 비판해야 하나?”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어요?”


무더웠던 여름은 가고 가을이 오나보다. 벌써 추석명절 이야기가 들려온다. 


“시댁이 어디세요?” 딱 걸린다. 여성들이 본인 스스로 시집을 높이고 친정을 낮추는 행위이다. 조선시대 후기에 들어와서 만개했던 종법(宗法)이라는 가족의 규율하에 강화됐던 부계혈통은 호주제도에 의해 정당화됐다. 부성(父姓)강제, 부계(父系)입적 등을 원칙으로 하는 호주제도는 폐지됐지만 여전히 친정을 낮추고 시집을 높이는 ‘친정’과 ‘시댁’이라는 불평등한 언어는 일상 속에 잔존하고 있는 것이다. ‘시댁’이라는 표현은 ‘친정댁’과 함께, ‘친정’은 ‘시집’과 나란히 공존해야 할 것이다.


“우리집 바깥양반은 추석에 시댁에 먼저 가자고 하고요” 혹은 “우리 집사람의 의견을 존중해서 처가댁에 가야지요.” 


대략 난감, 답이 안 나오는 말. 그러나 익숙하게 듣게 되는 말이다. 


개그콘서트 캡처


남녀가 어렸을 때부터 철저하게 위계적으로 구분돼 양육되어졌던 내외법(內外法)의 현대적 진화, 남녀 간 위계를 내포하고 있는 성별분업을 정당화하는 언어이다. ‘바깥 사람(양반)’ 혹은 ‘집사람’은 현실과는 전혀 맞지도 않는다. ‘바깥 사람’은 밖에만 있지도 않고 ‘집사람’은 집에 있지도 않다.


2012년 기준 기혼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49.6%이다. 소위 아줌마 2명 중 1명은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집에 있는 사람’으로, 남성들은 ‘바깥에 있는 사람’으로 불리는 것은 단지 애칭으로 끝나지 않는다. 밖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경제활동을 비가시화하고 남성들의 바깥일에만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게 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남녀 임금격차 수준이 OECD 국가의 평균보다 2배 이상 벌어진 것은 여성들의 노동이 비가시화되고 과소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바깥 사람(양반)” “집사람”이라는 표현처럼 한 성(性)이 있어야 할 일차적인 장소와 역할을 지정해 호명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옳지 않다.



그 외에도 여전히 한부모 가족은 언론에서 기능적 비정상성을 담고 있는 ‘결손가족’으로 등장하고 있고, 단지 임신이 어려울 뿐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난임부부’는 ‘불임부부’로 일컬어지고 있다. 여전히 성소수자는 이성애자와 대등하게 동성애자가 아니라 단지 연애와 섹스에만 관심있을 것이라는 폄하를 담은 ‘동성연애자’로 호명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는 양성평등한 사회를 지향해야 하잖아요!”라고요? ‘양성’이라는 표현은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 힘의 불균등함을 왜곡할 우려가 있다. 더 나아가 양성구유자 등의 성소수자들에게 2개의 성, 즉 양성만을 전제하는 것은 억압적일 수 있다. 올바른 표현은 ‘양성평등’이 아니라 ‘성평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상 속에서 사회적 약자의 차별에 민감한 감수성을 갖는다면 자연스럽게 올바른 정치적 표현에 관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 언어는 단지 현실의 반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바꾸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직장에서 사라져야 할 표현은 ‘직원 가족’ 등이 아닐까? 모든 조직과 기관을 가족화하는 것이야말로 성별, 연령에 따른 권력관계를 내재화하고 있는 가족을 탈정치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어로 살펴본 가족생활 총정리 끝~.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기획된 가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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