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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가 군복무 기간을 대학 학점으로 인정하거나 기업체의 호봉 산정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추진키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대학 재학 중 입대한 군인이 일정 시간과 형식을 갖춘 교육훈련 또는 부대활동을 이수하면 학점으로 인정해 주겠다는 것이다. 국방부가 내놓은 방안에 대해 “고교만 졸업한 군복무자와는 형평에 맞지 않고, 1999년 폐지된 군 가산점제도가 사실상 부활하는 것”이라는 의견과, “군인에게 줄 수 있는 최소한의 보상이어서 시행해야 한다”는 견해가 맞서고 있다.

■ 대학 안 다닌 8만 장병들과 차별

지난 9일 국방부는 ‘군복무 학점 인정제’ 도입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사실상 헌법재판소가 위헌 판결한 군가산점제를 부활시키려는 꼼수이며, 대학을 진학하지 않은 8만 병사들에 대한 차별이다.

군가산점제는 군복무를 원천적으로 봉쇄당한 장애인과 여성에 대한 차별이기 때문에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전원 일치된 의견으로 위헌결정을 한 만큼 이를 재론하는 것은 반헌법적 발상이다.

국방부가 해마다 철 지난 군가산점제도를 부활시키려는 속내는 병사들에게 실질적 혜택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이다.

한정된 국방예산 내에서 병사들의 월급을 인상하기 위해서는 장군들의 월급과 품위유지비, 무기구입비 등을 삭감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기 도입은 방위산업과 연결되어 있고, 방위산업은 퇴역 장군들의 고용 재창출이자 돈줄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군피아’들의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불순한 의도이다.

우리 헌법 39조 2항은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지금 병사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9학점이 아니라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존엄성’과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권리’일 것이다.

브라질월드컵에서 러시아를 상대로 득점한 이근호 선수는 대한민국 국군체육부대 소속 병장이다. 고작 14만원의 월급을 받는 이근호와 같이 애국하는 40만 병사에게 필요한 것은 ‘군복무 학점 인정제’도 아니며, 러시아 골키퍼 아킨페예프처럼 300억원의 거액 연봉도 아니다. 지금 그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군 복무기간 가족에게 손 내밀지 않을 만큼의 월급일 것이다.

군인권센터가 휴가병사를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72%가 월급이 부족하여 집에서 용돈을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우리와 같이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는 대만(28만원)과 독일(39만원)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병사들의 급여가 과거에 비해 인상되었다고는 하지만 같은 시기 물가나 생활수준의 향상은 물론 장교나 부사관의 급여와 비교해서 보면 이는 인상이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로 2012년 국정감사 당시 국회 국방위원회 김재윤 의원에게 국방부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1950년 창군 당시 이등병과 대장의 월급 차이는 30배였던 반면, 2012년 200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병사 월급의 현실화와 관련해 국방부는 2006~2010년 ‘국방중기계획서’에 병영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비용을 보장하는 수준의 병사 월급을 반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병사 월급을 40만~50만원으로 인상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하자 김관진 국방장관은 반대의견을 표명하였다. 이는 병사들의 인권을 앞장서서 책임져야 할 주무장관이 병사들의 사회권적 기본권에 대한 천박한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19대 국회는 병사 월급과 관련한 공청회나 토론회를 개최하지 않고 있으며, 예결위에서도 이러한 논의는 하지 않고 있다. 40만 병사들은 선거 시기에만 잠깐 유권자이고 선거가 끝나면 노예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고 있다.

병사들 월급 수준의 현실화는 과연 얼마까지 인상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예산편성문제, 그리고 의무병이라는 점 등을 충분히 고려하고 검토해서 결정해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검토와 고려만 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제라도 재정현실과 경제상황, 물가와 생활수준 등 최소한의 필요를 반영한 월급 인상을 해야 할 것이다.

정부당국은 허울뿐인 ‘군복무 학점 인정제’ 도입이 아니라 실질적인 월급 인상을 하기 위한 제도적 방안을 시급히 강구해야 한다.


<임태훈 | 군인권센터 소장>


■ 공정한 시스템 갖추면 도입 가능

군 복무 경험을 학점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국방부 방안이 사회적 차별을 야기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17년 말 시행을 목표로 추진하는 이 방안은 평생학습시대의 학습관리체제 구축이라는 관점에서 우선 바라볼 필요가 있다. 현행 고등교육법 제23조는 개별 대학이 학점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경우를 여섯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그중 다섯 가지는 대학 수준의 강의를 수강한 경우들로 전형적인 학교교육의 학습관리 방식이다. 나머지 하나는 강의 수강과 무관하게 학점을 인정하는 경우이다. 즉, 다른 학교나 연구기관 또는 산업체 등에서 학습, 연구, 실습한 사실 또는 산업체에서 근무한 사실을 학점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를 선행경험 학습인정이라고 하는데 서구에서는 오래전부터 실시하고 있다. 주로 직업 생활을 통해 학습한 결과를 평가해 학점 등으로 인정하는데 미국에서는 제대 장병들의 사회 복귀를 지원하는 데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개인이 학교 등 형식교육 기관 외부에서 경험을 통해 학습한 결과를 평가해 인정하는 것은 두 가지 의의가 있다. 첫째는 현장의 경험 학습 결과를 자격이나 학력과 연계하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3년 이상 직업 생활에 종사한 개인은 누구든지 직업 경험을 통해 학습한 결과가 대학 졸업9생과 동등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인정받으면 별도의 강의 수강 없이 학위를 받을 수 있다.

물론 희망자는 경험 학습의 결과로 갖춘 역량을 포트폴리오로 작성해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이를 통해 학사는 물론 석사와 박사 학위도 받는다. 미국과 캐나다의 대학들은 주로 관련 과목의 학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둘째, 선행경험 학습의 인정을 통해 개인이 그동안 직업생활 등을 통해 학습한 결과로 갖춘 역량이 무엇인지를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원하는 경력 전환을 위해 더 필요한 공부가 무엇인지를 안내받을 수 있다.

인생 이모작, 삼모작이 일반화되면서 전직과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만약 개인이 그동안 직업생활을 통해 학습한 결과로 갖추게 된 역량과 희망하는 직업 분야에서 요구하는 역량을 비교 확인할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개인이 경험을 통해 학습하는 것과 대학 강의실에서 학습하는 것은 그 차원이 다르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학 강의실에서 배우든 현장에서 경험을 통해 배우든 중요한 것은 학습자가 배움의 결과로 필요한 역량을 갖추고 있는가이다. 대학 강의실에 앉아 있었지만 무엇을 배웠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와 현장에서 일하며 학습한 결과를 사회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형태로 제시하는 경우 중 어느 편이 인정받을 만한지는 자명하다.

이 제도는 장병들이 군 복무를 통해 학습한 결과를 공정하게 기록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 기록이 대학 강의의 교육목표, 각종 자격의 요구 역량, 기업의 직무 능력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자료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이 신뢰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면 소위 ‘인플레 학점’이 기록된 대학의 성적증명서보다 인재를 선별하는 데 더 가치 있게 쓰일 수 있다. 제대 장병들은 특정 강의가 교육목표로 삼고 있는 지식과 기술 등을 군 복무 중에 충분히 학습했다며 대학에 학점을 인정해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평생학습 시대에는 누구나 언제 어디서 학습한 것이든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학습관리체제를 필요로 한다. 선행경험 학습인정은 그 핵심 제도이다.

국방부가 장병 개개인 별로 복무 경험을 통해 학습한 결과를 공정하게 기록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사회 각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 능력중심 사회의 실현도 크게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강대중 |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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